가끔 자신의 수도회의 존속을 걱정하는 이들을 만나게 됩니다. 참으로 공연한 걱정이라는 생각입니다. 영원하신 하느님을 섬기기 위해 만들어진 수도회가 그 정신을 유지한다면 하느님께서 세상 끝날까지 남겨 주실 것이고 그렇지 않으면 사라져야 마땅한 법이지요.
대구교구에서 하는 볼리비아 선교가 언제까지 지속될까요? 그것도 역시 하느님의 손에 달린 문제입니다. 우리의 일이 하느님 보시기에 아름답다면 그 어떤 역경에도 불구하고 계속될 것이고 그렇지 않다면 그치게 될 것입니다.
한국 교회의 영화는 얼마나 지속될까요? 무엇을 두고 ‘영화’라고 하는지 모르겠지만 순교자의 피로써 쌓여진 그 신앙의 바탕이 지속된다면 한국 교회는 세상 끝날까지 있을 것이고 그렇지 않고 엉뚱한 영화(부유함, 세속적 권력)만을 찾는다면 사라지게 될 것입니다.
교회의 이름을 걸고 생겨난 모든 ‘공동체’의 운명은 바로 하느님의 손에 달린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가 걱정해야 할 것은 공동체의 존속이 아니라 우리가 얼마나 하느님의 뜻에 합당하게 살고 있나 아닌가 하는 것입니다.
모이면 진탕 술이나 퍼마시고 저희들끼리 싸우기만 하는 교리교사회는 없는 편이 더 낫습니다. 자신들의 그 악한 표양으로 아이들에게 무슨 교리를 가르친다는 말입니까? 그 교리교사회가 사라지고 나면 하느님이 나서서 필요한 사람들을 부르실 것이고 다시 잃어버린 영혼들을 찾으실 것입니다. 그러나 불행합니다. 그러고 있는 그들. 차라리 영혼들을 책임지는 소명을 떠맡지 않았더라면 매를 덜 맞았을텐데 말이지요.
대구교구에서 하는 볼리비아 선교가 언제까지 지속될까요? 그것도 역시 하느님의 손에 달린 문제입니다. 우리의 일이 하느님 보시기에 아름답다면 그 어떤 역경에도 불구하고 계속될 것이고 그렇지 않다면 그치게 될 것입니다.
한국 교회의 영화는 얼마나 지속될까요? 무엇을 두고 ‘영화’라고 하는지 모르겠지만 순교자의 피로써 쌓여진 그 신앙의 바탕이 지속된다면 한국 교회는 세상 끝날까지 있을 것이고 그렇지 않고 엉뚱한 영화(부유함, 세속적 권력)만을 찾는다면 사라지게 될 것입니다.
교회의 이름을 걸고 생겨난 모든 ‘공동체’의 운명은 바로 하느님의 손에 달린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가 걱정해야 할 것은 공동체의 존속이 아니라 우리가 얼마나 하느님의 뜻에 합당하게 살고 있나 아닌가 하는 것입니다.
모이면 진탕 술이나 퍼마시고 저희들끼리 싸우기만 하는 교리교사회는 없는 편이 더 낫습니다. 자신들의 그 악한 표양으로 아이들에게 무슨 교리를 가르친다는 말입니까? 그 교리교사회가 사라지고 나면 하느님이 나서서 필요한 사람들을 부르실 것이고 다시 잃어버린 영혼들을 찾으실 것입니다. 그러나 불행합니다. 그러고 있는 그들. 차라리 영혼들을 책임지는 소명을 떠맡지 않았더라면 매를 덜 맞았을텐데 말이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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