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께서는 희생과 제물을 기꺼워하지 않으시고 오히려 저의 귀를 열어 주셨습니다. 번제물과 속죄 제물을 당신께서는 바라지 않으셨습니다. (시편 40,7)
번제물이라는 것, 속죄 제물이라는 것은 고대로부터의 전통이었습니다. 드높은 신이 우리가 내어 바치는 제물을 통해서 우리에게 무언가 좋은 것(축복 - 복을 빌어 줌, 속죄 - 죄를 용서해줌)을 해 주실 것이라는 아주 단순한 생각에서 비롯하는 것이지요. 그리고 이는 오늘날에도 여전히 이어지고 있습니다. 우리 가톨릭의 전통 안에서 ‘미사 예물’이라는 것이 바로 그 형태의 변형으로 존재하는 것이지요.
하지만 이때에 사람들이 잊고 있는 것은 하느님은 예물 그 자체를 보시는 분이 아니라 그 정성을 보시는 분이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님도 가난한 과부의 동전 두 닢이 부자들의 많은 돈보다 더 소중한 봉헌이라고 말씀하셨지요.
무엇보다도 하느님이 진정으로 바라는 것은 우리의 소유물이 아니라 ‘우리 자체’입니다. 하느님은 우리의 ‘의지’가 봉헌되기를 바라시는 분입니다. 우리가 우리 스스로의 자유의지를 봉헌하기를 바라시지요. 사람은 자신의 의지를 봉헌할 때에 진정한 봉헌이 이루어진다고 할 수 있는 것입니다.
수많은 부자들은 여전히 자신을 구원하기 위해서, 혹은 전능하신 분의 도움을 얻기 위해서 자신의 소유물의 일부를 봉헌할 것입니다. 그리고 하느님은 그들의 마음을 보시겠지요. 그들은 그렇게 하느님과 무의미한 밀당을 하고 있는 셈입니다. 하느님은 그들의 마음을 이미 아시고 그들이 아직 자신을 봉헌할 의지가 없음을 알고, 오히려 자신의 봉헌물을 통해서 하느님을 움직이려 든다는 것을 알지요.
가만히 생각해 봅시다. 만일 하느님이 허락하시지 않았더라면 그들은 그만한 재산을 지니기는 커녕 세상에 태어나지도 않았을 것입니다. 헌데 그들은 자신들이 소유한 것을 여전히 자신의 소유로 삼은 채로 하느님에게 남는 것 가운데 지극히 일부를 봉헌하고 있는 것입니다.
과연 천지를 창조하신 하느님이 그 봉헌물이 필요할 거라고 생각하는 걸까요? 사탕 공장 주인이 아이가 사탕 하나를 들고 와서 부탁을 한다고 정말 그 사탕이 필요해서 그의 부탁을 들어준다고 생각하는 걸까요? 하느님이 진정으로 바라시는 것이 무엇인지 그들은 이해하지 못하는 것일까요? 하느님은 우리가 ‘귀를 열기’를 바라십니다. 우리가 당신의 말씀을 듣고 깨달아 우리의 온 존재가 하느님에게로 돌아서기를 바라시는 것입니다.
참으로 쉬운 내용이지만 받아들여 이해하고 실천하기는 참으로 어려운 내용입니다. 여전히 우리는 우리가 가진 무엇으로 하느님을 조종하고 싶어합니다. 그러나 하느님은 우리의 온 존재를 구석구석까지 보시며 우리의 봉헌이 진실한 것인가 아닌가를 바라보시는 분이십니다. 하느님은 우리의 모든 것을 원하시는 분이십니다. 하느님과 엉뚱하게 거래하려 드는 일은 없기를 바랍니다. 우리의 모든 것은 하느님의 것입니다.
번제물이라는 것, 속죄 제물이라는 것은 고대로부터의 전통이었습니다. 드높은 신이 우리가 내어 바치는 제물을 통해서 우리에게 무언가 좋은 것(축복 - 복을 빌어 줌, 속죄 - 죄를 용서해줌)을 해 주실 것이라는 아주 단순한 생각에서 비롯하는 것이지요. 그리고 이는 오늘날에도 여전히 이어지고 있습니다. 우리 가톨릭의 전통 안에서 ‘미사 예물’이라는 것이 바로 그 형태의 변형으로 존재하는 것이지요.
하지만 이때에 사람들이 잊고 있는 것은 하느님은 예물 그 자체를 보시는 분이 아니라 그 정성을 보시는 분이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님도 가난한 과부의 동전 두 닢이 부자들의 많은 돈보다 더 소중한 봉헌이라고 말씀하셨지요.
무엇보다도 하느님이 진정으로 바라는 것은 우리의 소유물이 아니라 ‘우리 자체’입니다. 하느님은 우리의 ‘의지’가 봉헌되기를 바라시는 분입니다. 우리가 우리 스스로의 자유의지를 봉헌하기를 바라시지요. 사람은 자신의 의지를 봉헌할 때에 진정한 봉헌이 이루어진다고 할 수 있는 것입니다.
수많은 부자들은 여전히 자신을 구원하기 위해서, 혹은 전능하신 분의 도움을 얻기 위해서 자신의 소유물의 일부를 봉헌할 것입니다. 그리고 하느님은 그들의 마음을 보시겠지요. 그들은 그렇게 하느님과 무의미한 밀당을 하고 있는 셈입니다. 하느님은 그들의 마음을 이미 아시고 그들이 아직 자신을 봉헌할 의지가 없음을 알고, 오히려 자신의 봉헌물을 통해서 하느님을 움직이려 든다는 것을 알지요.
가만히 생각해 봅시다. 만일 하느님이 허락하시지 않았더라면 그들은 그만한 재산을 지니기는 커녕 세상에 태어나지도 않았을 것입니다. 헌데 그들은 자신들이 소유한 것을 여전히 자신의 소유로 삼은 채로 하느님에게 남는 것 가운데 지극히 일부를 봉헌하고 있는 것입니다.
과연 천지를 창조하신 하느님이 그 봉헌물이 필요할 거라고 생각하는 걸까요? 사탕 공장 주인이 아이가 사탕 하나를 들고 와서 부탁을 한다고 정말 그 사탕이 필요해서 그의 부탁을 들어준다고 생각하는 걸까요? 하느님이 진정으로 바라시는 것이 무엇인지 그들은 이해하지 못하는 것일까요? 하느님은 우리가 ‘귀를 열기’를 바라십니다. 우리가 당신의 말씀을 듣고 깨달아 우리의 온 존재가 하느님에게로 돌아서기를 바라시는 것입니다.
참으로 쉬운 내용이지만 받아들여 이해하고 실천하기는 참으로 어려운 내용입니다. 여전히 우리는 우리가 가진 무엇으로 하느님을 조종하고 싶어합니다. 그러나 하느님은 우리의 온 존재를 구석구석까지 보시며 우리의 봉헌이 진실한 것인가 아닌가를 바라보시는 분이십니다. 하느님은 우리의 모든 것을 원하시는 분이십니다. 하느님과 엉뚱하게 거래하려 드는 일은 없기를 바랍니다. 우리의 모든 것은 하느님의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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