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구의 생일잔치는 가면 가는 것이고 안가면 그 친구가 조금 속상해할 뿐입니다. 하지만 하느님의 잔치는 차원이 다른 것입니다. 이는 하느님이 어떤 분이신가에 따라 달렸습니다.
우리는 하느님을 과소평가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물론 우리의 한계에서 기인하는 것이지요. 우리는 하느님을 온전히 인지하지 못합니다. 절대로 불가능한 일이지요. 하다못해 우리는 우리의 손가락 하나도 제대로 알지 못합니다. 그 안의 모세혈관의 분포와 손톱이 자라는 원리, 표피와 진피의 배치와 땀구멍의 역할과 혈관과의 사이에서 주고 받는 과정, 그리고 DNA의 구성과 원자와 분자 단위의 배치도는 우리가 우리의 온 생을 다 바쳐서 연구해도 모자랄 것입니다. 헌데 우리는 세상 만물을 이루신 하느님을 우리의 ‘이성’ 속으로 집어넣어 이해하려고 드니 얼마나 무모한 일인지 모릅니다.
하느님은 우리의 이해를 초월하시는 분이시며 당신의 표현 대로라면 세상 만물의 주인이고 모든 것이십니다. 그런 분이 하는 초대는 분명 우리 동네 친구의 생일잔치 초대와는 명백히 다른 것이지요. 여기에는 ‘심각성’이 존재하는 것입니다.
하느님이 그 초대의 수용 여부를 열어두시는 것은 그 핵심에 우리의 ‘자유의지’가 있기 때문입니다. 하느님이 우리의 자유의지를 손상해 가면서 초대를 한다면 그것은 초대가 아니라 강요일 뿐이며 아무 짝에도 소용없는 것일 뿐입니다. 지금 내 앞에 있는 책을 오른쪽에 두나 왼쪽에 두나 그것은 내가 원하는 것을 하는 것일 뿐, 그 위치의 배치에 대해서 책이 무슨 결정을 내리는 것이 아닙니다. 하지만 한 아이가 나에게 다가와서 나를 좋아한다고 고백을 하는 것은 그 아이의 자유의지에서 나오는 아주 소중한 결정이지요.
하느님의 초대는 ‘모든 이에게’ 주어졌습니다. 그러나 사람들이 모두 그 초대를 받아들인 것은 아니었습니다. 단순히 초대를 무시하고 거절한 것뿐만이 아니라 초대하는 이를 공격하고 죽이려는 이들도 존재합니다. 오, 하느님 그들의 영혼을 용서하소서. 하느님의 초대를 사람들에게 전하려는 소중한 영혼을 공격해 들어가는 그들의 영혼은 얼마나 피폐한 것일까요? 하느님은 성경 안에서 이런 표현까지 쓰십니다.
그들은 아랑곳하지 않고, 어떤 자는 밭으로 가고 어떤 자는 장사하러 갔다. 그리고 나머지 사람들은 종들을 붙잡아 때리고 죽였다. 임금은 진노하였다. 그래서 군대를 보내어 그 살인자들을 없애고 그들의 고을을 불살라 버렸다. (마태 22,5-7)
하느님의 초대는 심각한 것입니다. 물론 언제까지나 우리의 자유의지에 열려 있는 것이지만 그 초대를 거절했을 때에는 분명한 책임을 져야 합니다. 사랑과 행복으로의 초대를 거절하는 이에게 남는 것은 증오와 불행일 뿐입니다. 그러나 사람들은 여전히 이를 온전히 인식하지 못하고 있는 경우가 많습니다. 차라리 모르면 매나 덜 맞을 것을 사람들은 하느님을 잘 안다고 하면서 하느님의 초대를 거절합니다.
우리는 하느님을 과소평가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물론 우리의 한계에서 기인하는 것이지요. 우리는 하느님을 온전히 인지하지 못합니다. 절대로 불가능한 일이지요. 하다못해 우리는 우리의 손가락 하나도 제대로 알지 못합니다. 그 안의 모세혈관의 분포와 손톱이 자라는 원리, 표피와 진피의 배치와 땀구멍의 역할과 혈관과의 사이에서 주고 받는 과정, 그리고 DNA의 구성과 원자와 분자 단위의 배치도는 우리가 우리의 온 생을 다 바쳐서 연구해도 모자랄 것입니다. 헌데 우리는 세상 만물을 이루신 하느님을 우리의 ‘이성’ 속으로 집어넣어 이해하려고 드니 얼마나 무모한 일인지 모릅니다.
하느님은 우리의 이해를 초월하시는 분이시며 당신의 표현 대로라면 세상 만물의 주인이고 모든 것이십니다. 그런 분이 하는 초대는 분명 우리 동네 친구의 생일잔치 초대와는 명백히 다른 것이지요. 여기에는 ‘심각성’이 존재하는 것입니다.
하느님이 그 초대의 수용 여부를 열어두시는 것은 그 핵심에 우리의 ‘자유의지’가 있기 때문입니다. 하느님이 우리의 자유의지를 손상해 가면서 초대를 한다면 그것은 초대가 아니라 강요일 뿐이며 아무 짝에도 소용없는 것일 뿐입니다. 지금 내 앞에 있는 책을 오른쪽에 두나 왼쪽에 두나 그것은 내가 원하는 것을 하는 것일 뿐, 그 위치의 배치에 대해서 책이 무슨 결정을 내리는 것이 아닙니다. 하지만 한 아이가 나에게 다가와서 나를 좋아한다고 고백을 하는 것은 그 아이의 자유의지에서 나오는 아주 소중한 결정이지요.
하느님의 초대는 ‘모든 이에게’ 주어졌습니다. 그러나 사람들이 모두 그 초대를 받아들인 것은 아니었습니다. 단순히 초대를 무시하고 거절한 것뿐만이 아니라 초대하는 이를 공격하고 죽이려는 이들도 존재합니다. 오, 하느님 그들의 영혼을 용서하소서. 하느님의 초대를 사람들에게 전하려는 소중한 영혼을 공격해 들어가는 그들의 영혼은 얼마나 피폐한 것일까요? 하느님은 성경 안에서 이런 표현까지 쓰십니다.
그들은 아랑곳하지 않고, 어떤 자는 밭으로 가고 어떤 자는 장사하러 갔다. 그리고 나머지 사람들은 종들을 붙잡아 때리고 죽였다. 임금은 진노하였다. 그래서 군대를 보내어 그 살인자들을 없애고 그들의 고을을 불살라 버렸다. (마태 22,5-7)
하느님의 초대는 심각한 것입니다. 물론 언제까지나 우리의 자유의지에 열려 있는 것이지만 그 초대를 거절했을 때에는 분명한 책임을 져야 합니다. 사랑과 행복으로의 초대를 거절하는 이에게 남는 것은 증오와 불행일 뿐입니다. 그러나 사람들은 여전히 이를 온전히 인식하지 못하고 있는 경우가 많습니다. 차라리 모르면 매나 덜 맞을 것을 사람들은 하느님을 잘 안다고 하면서 하느님의 초대를 거절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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