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이런 저런 것들 가운데 좋은 것을 선택하며 살아왔습니다. 더 나은 옵션을 체험하지 못하는 이상은 내가 겪은 것들 중에 제일 나았던 것이 최고의 옵션이 되는 것이지요. 물건은 그렇게 고르는 게 맞습니다. 내가 보고 더 나은 것을 고르는 것이지요. 하지만 삶을 그렇게 고르고 또 나아가 타인에게 내밀 수는 없습니다.
삶의 다양성은 각자에게 주어진 능력에 따라 서로 다르게 되는 것입니다. 예컨대 모두가 다 대학에 갈 필요는 없습니다. 대학은 더 많은 학습 능력을 지닌 아이가 배움의 길을 더 걷기 위해서 가는 곳이어야 합당한 것이지요. 물론 오늘날 한국에서 대학은 또다른 ‘기초과정’중의 하나가 되어 버렸지만 말입니다. 오히려 대학을 나오지 않으면 이상한 사람 취급을 받게 되어 버렸지요.
그렇다면 ‘나은 삶’은 존재하지 않는 것일까요? 분명히 존재합니다. 그러나 더 나은 삶은 지상에서 어떤 종류의 삶을 선택하는가 하는 문제가 아니라 삶 자체를 들어올리는 것을 의미합니다. 즉 ‘하느님’과 함께 나아가는 삶을 의미하지요. 그리고 이러한 삶은 지상에서 자신이 어떤 처지에 놓여 있든, 무슨 일을 하건 똑같이 적용될 수 있는 것입니다.
극단적인 비유로 이런 비유를 들 수 있습니다. 하느님의 뜻에 맞게 하루를 꾸려 나가는 일용직 노동자의 삶이 하느님 없이 오직 자신의 이기적인 탐욕으로 살아가는 대학병원 의사의 삶보다 훨씬 낫다고 할 수 있지요. 그리고 이것은 실제로 일어나고 있는 사실입니다.
제가 일하는 본당의 사람들은 한국의 전문 직종의 사람들에 비하면 참으로 보잘 것 없고 초라합니다. 하지만 그들은 성실하게 하루를 꾸려 나가면서 나름의 소박한 ‘행복’을 누립니다. 비록 스타XX의 커피는 없지만 자신들 나름의 커피와 차를 마시면서 같은 수준의 행복감을 누리고, 비록 고급 백화점 쇼핑은 하지 못하지만 시장통에 나아가 먹거리를 고르면서 비슷한 충족감을 누리지요. 아니 오히려 반대로 이들을 그런 고급 백화점에 데리고 가면 도리어 불편해 합니다. 자신들의 초라함이 그 백화점의 화려함 속에 짓눌리는 걸 느끼기 때문이지요.
더 나은 삶은 존재합니다. 하지만 그것을 더 나은 소유의 삶으로 바꾸어버리지 않게 되기를 바랍니다. 더 나은 삶은, 하느님과 함께하는 삶입니다. 그분의 사랑을 체험하는 삶이지요.
삶의 다양성은 각자에게 주어진 능력에 따라 서로 다르게 되는 것입니다. 예컨대 모두가 다 대학에 갈 필요는 없습니다. 대학은 더 많은 학습 능력을 지닌 아이가 배움의 길을 더 걷기 위해서 가는 곳이어야 합당한 것이지요. 물론 오늘날 한국에서 대학은 또다른 ‘기초과정’중의 하나가 되어 버렸지만 말입니다. 오히려 대학을 나오지 않으면 이상한 사람 취급을 받게 되어 버렸지요.
그렇다면 ‘나은 삶’은 존재하지 않는 것일까요? 분명히 존재합니다. 그러나 더 나은 삶은 지상에서 어떤 종류의 삶을 선택하는가 하는 문제가 아니라 삶 자체를 들어올리는 것을 의미합니다. 즉 ‘하느님’과 함께 나아가는 삶을 의미하지요. 그리고 이러한 삶은 지상에서 자신이 어떤 처지에 놓여 있든, 무슨 일을 하건 똑같이 적용될 수 있는 것입니다.
극단적인 비유로 이런 비유를 들 수 있습니다. 하느님의 뜻에 맞게 하루를 꾸려 나가는 일용직 노동자의 삶이 하느님 없이 오직 자신의 이기적인 탐욕으로 살아가는 대학병원 의사의 삶보다 훨씬 낫다고 할 수 있지요. 그리고 이것은 실제로 일어나고 있는 사실입니다.
제가 일하는 본당의 사람들은 한국의 전문 직종의 사람들에 비하면 참으로 보잘 것 없고 초라합니다. 하지만 그들은 성실하게 하루를 꾸려 나가면서 나름의 소박한 ‘행복’을 누립니다. 비록 스타XX의 커피는 없지만 자신들 나름의 커피와 차를 마시면서 같은 수준의 행복감을 누리고, 비록 고급 백화점 쇼핑은 하지 못하지만 시장통에 나아가 먹거리를 고르면서 비슷한 충족감을 누리지요. 아니 오히려 반대로 이들을 그런 고급 백화점에 데리고 가면 도리어 불편해 합니다. 자신들의 초라함이 그 백화점의 화려함 속에 짓눌리는 걸 느끼기 때문이지요.
더 나은 삶은 존재합니다. 하지만 그것을 더 나은 소유의 삶으로 바꾸어버리지 않게 되기를 바랍니다. 더 나은 삶은, 하느님과 함께하는 삶입니다. 그분의 사랑을 체험하는 삶이지요.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