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도밭의 일꾼들에 대한 비유는 여러가지 면모로 생각해 볼 수 있습니다. 하지만 핵심을 간단히 살펴보면 하느님 편에서의 관점과 일꾼 편에서의 관점으로 크게 나누어 살펴볼 수 있습니다.
먼저 하느님의 입장에서 살펴봅시다. 하느님이 초대하지 않았더라면 일도 없고 받을 삯도 없었을 일꾼들입니다. 그런 그들을 불러서 일을 시키고 일꾼들이 동의한 ‘정당한 임금’을 약속하고 당신이 일을 시킬 때 약속한 몫을 주시려는 하느님입니다. 그리고 모든 일꾼들에게 넉넉한 임금을 주시려는 분이시지요. 하느님으로서는 당신의 사랑을 베푼 것 뿐입니다. 처음부터 마침까지 그러하셨던 것이지요. 모든 것은 당신의 애정이자 호의였을 뿐입니다. 이런 하느님의 모습을 통해서 우리는 참된 희망, 즉 너끈한 상급을 받을 것이라는 희망을 지녀볼 수 있지요. 우리의 하느님은 참으로 좋으신 분이십니다.
이제는 일꾼의 입장입니다. 하지만 여기에서 두 가지 입장이 나뉘게 됩니다. 즉, 먼저 온 일꾼과 나중에 온 일꾼이지요. 나중에 온 일꾼이야 마냥 좋을 뿐입니다. 마지막 순간까지 아무도 찾지 않아서 일도 없이 지내다가 삯도 얻지 못하고 주린 배를 움켜쥐고 집으로 돌아가야 하나 생각했는데 어디선가 구세주가 나타나 자신들에게 일을 주고 거기다가 후한 삯도 주니 그저 고마울 따름입니다.
문제는 먼저 온 일꾼들이지요. 이들은 분명 주인과 합당한 삯을 받기로 약조를 하고 일을 시작했습니다. 헌데 마지막에 가서 뒤늦게 온 이들이 받는 상급을 보고는 그만 ‘심통’이 난 것입니다. 이들은 ‘비교’를 한 것이고 자신들이 나중에 온 이들과 다르다고 생각한 것이지요. 자신들의 노동의 시간과 양의 가치가 정말 소중하고 중요한 것이라고 착각을 하기 시작한 것입니다. 이들은 자신들의 가장 처음 상황이 어떠했는지를 전혀 기억하지 못하고 있는 셈이지요. 주인이 부르지 않았더라면 자신들은 아무것도 할 능력이 없는 이라는 것을 전혀 이해하지 못하고 어느 순간 교만해져 버린 셈입니다.
만일 이 처음에 온 이들이 ‘비교’하기를 그만두었더라면 자신들이 열심히 일한 그만큼의 정당한 삯을 받고 기뻐할 수 있었을 것입니다. 하지만 이들은 ‘비교’하기 시작했고 ‘시기’하기 시작해서 나쁜 마음을 먹게 된 것이지요. 이들은 스스로에게 불행을 조장하기 시작한 셈입니다. 하느님은 당신의 호의로 할 수 있었던 일을 한 것 뿐이지요.
자기 스스로를 부자 나라에서 태어나서 문명화가 잘 된 더 나은 사람이라고 인식하는 이들, 자신이 받은 직분이 남들보다 뛰어난 것이라고 착각하는 이들, 어느 일에 연차가 많다고 남보다 자신을 우월하다고 내세우는 이들, 어떤 형태이든지간에 ‘교만’이라는 것은 결국 우리 스스로를 불행하게 만들 뿐입니다.
아닌게 아니라 가난한 이들과 함께하는 자리를 역겨워하는 이들이 존재합니다. 무식한 이들과 함께 어울려서 노는 것을 싫어하는 이들이 있습니다. 자신이 즐기는 취미가 교양있다고 여기면서 그런 취미를 갖지 못한 이들은 저질이라고 생각하는 이들이 있습니다. 하느님은 그들에게 그저 약속한 것을 주실 뿐입니다. 그들은 스스로를 불해하게 만들 뿐이지요. 행복과 불행은 하느님이 선물하는 게 아니라 일꾼들 스스로 조장하는 것일 뿐입니다.
먼저 하느님의 입장에서 살펴봅시다. 하느님이 초대하지 않았더라면 일도 없고 받을 삯도 없었을 일꾼들입니다. 그런 그들을 불러서 일을 시키고 일꾼들이 동의한 ‘정당한 임금’을 약속하고 당신이 일을 시킬 때 약속한 몫을 주시려는 하느님입니다. 그리고 모든 일꾼들에게 넉넉한 임금을 주시려는 분이시지요. 하느님으로서는 당신의 사랑을 베푼 것 뿐입니다. 처음부터 마침까지 그러하셨던 것이지요. 모든 것은 당신의 애정이자 호의였을 뿐입니다. 이런 하느님의 모습을 통해서 우리는 참된 희망, 즉 너끈한 상급을 받을 것이라는 희망을 지녀볼 수 있지요. 우리의 하느님은 참으로 좋으신 분이십니다.
이제는 일꾼의 입장입니다. 하지만 여기에서 두 가지 입장이 나뉘게 됩니다. 즉, 먼저 온 일꾼과 나중에 온 일꾼이지요. 나중에 온 일꾼이야 마냥 좋을 뿐입니다. 마지막 순간까지 아무도 찾지 않아서 일도 없이 지내다가 삯도 얻지 못하고 주린 배를 움켜쥐고 집으로 돌아가야 하나 생각했는데 어디선가 구세주가 나타나 자신들에게 일을 주고 거기다가 후한 삯도 주니 그저 고마울 따름입니다.
문제는 먼저 온 일꾼들이지요. 이들은 분명 주인과 합당한 삯을 받기로 약조를 하고 일을 시작했습니다. 헌데 마지막에 가서 뒤늦게 온 이들이 받는 상급을 보고는 그만 ‘심통’이 난 것입니다. 이들은 ‘비교’를 한 것이고 자신들이 나중에 온 이들과 다르다고 생각한 것이지요. 자신들의 노동의 시간과 양의 가치가 정말 소중하고 중요한 것이라고 착각을 하기 시작한 것입니다. 이들은 자신들의 가장 처음 상황이 어떠했는지를 전혀 기억하지 못하고 있는 셈이지요. 주인이 부르지 않았더라면 자신들은 아무것도 할 능력이 없는 이라는 것을 전혀 이해하지 못하고 어느 순간 교만해져 버린 셈입니다.
만일 이 처음에 온 이들이 ‘비교’하기를 그만두었더라면 자신들이 열심히 일한 그만큼의 정당한 삯을 받고 기뻐할 수 있었을 것입니다. 하지만 이들은 ‘비교’하기 시작했고 ‘시기’하기 시작해서 나쁜 마음을 먹게 된 것이지요. 이들은 스스로에게 불행을 조장하기 시작한 셈입니다. 하느님은 당신의 호의로 할 수 있었던 일을 한 것 뿐이지요.
자기 스스로를 부자 나라에서 태어나서 문명화가 잘 된 더 나은 사람이라고 인식하는 이들, 자신이 받은 직분이 남들보다 뛰어난 것이라고 착각하는 이들, 어느 일에 연차가 많다고 남보다 자신을 우월하다고 내세우는 이들, 어떤 형태이든지간에 ‘교만’이라는 것은 결국 우리 스스로를 불행하게 만들 뿐입니다.
아닌게 아니라 가난한 이들과 함께하는 자리를 역겨워하는 이들이 존재합니다. 무식한 이들과 함께 어울려서 노는 것을 싫어하는 이들이 있습니다. 자신이 즐기는 취미가 교양있다고 여기면서 그런 취미를 갖지 못한 이들은 저질이라고 생각하는 이들이 있습니다. 하느님은 그들에게 그저 약속한 것을 주실 뿐입니다. 그들은 스스로를 불해하게 만들 뿐이지요. 행복과 불행은 하느님이 선물하는 게 아니라 일꾼들 스스로 조장하는 것일 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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