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느님께서 영혼을 붙들고 일을 하실 때에 어떤 영혼을 선호하실까요? 당연히 쥐기 쉽고 가벼운 영혼일 것입니다. 그 말은 그 영혼이 참으로 겸손한 영혼이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하느님은 재능이 없는 이에게 그 즉시 재능을 선물할 수도 있습니다. 성령이 내려오셨을때 제자들은 자신들에게 존재하지 않던 능력으로 세상 사람들의 여러가지 언어를 말할 수 있었던 것이 좋은 예가 될 것입니다. 인간적인 능력과 재능이라는 것은 부차적인 것에 불과합니다. 핵심은 ‘겸손한 영혼’입니다.
겸손한 영혼은 하느님 앞에 서 있는 자신의 위치를 아는 영혼입니다. 한 마디로 하느님 앞에서는 우리가 내세울 만한 것이 아무것도 없습니다. 모든 것은 하느님으로부터 받은 것이기 때문이고 그분이 허락하시지 않았더라면 우리가 무언가 조금이라도 낫게 할 수 있는 것은 존재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헌데 이런 가운데 자신을 뽐내는 이들이 등장하기 시작합니다. 자신이 뭔가 잘 한 무엇으로 남들보다 낫다고 생각하기 시작합니다. 하느님이 허락하시지 않았더라면 아예 태어나지도 못했을 주제에 지금 자신이 ‘소유’하고 있는 모든 재산, 미모, 학력, 경력, 학위, 명예, 권력과 같은 모든 것이 마치 자기 스스로 이루어 낸 업적인 듯 생각하고 으스대는 이들이 있습니다. 하느님은 그의 모든 것을 아시면서, 그의 미천함의 바닥을 아시면서 그를 내버려 두십니다. 제 아무리 날고 기는 인간이라도 자신의 수명을 넘어서지는 못하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그런 교만한 이들을 통해서 참된 그리스도인들은 보다 더 겸손과 사랑을 훈련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렇게 영혼 안에 겸손과 사랑이 점점 완성되어가면 결국 하느님은 당신이 계획한 일에 그 영혼을 쓰시는 것입니다. 하느님이 계획하신 일이라는 것은 엄청나게 위대한 일이지만 우리의 시선으로는 전혀 그렇게 보이지 않을 것입니다. 힘들어하는 친구를 찾아가 그의 이야기를 경청하는 것이 하느님의 가장 위대한 일이었을 줄 누가 상상이나 하겠습니까? 그 힘들어하던 친구가 자살까지 생각하다가 하느님의 사람을 만나 그의 따스함을 체험하고 자살을 포기하고, 다시 힘을 내어 살아가 그의 온 가족이 하느님의 축복을 얻게 되는 그 미래의 일을 한낱 인간인 우리가 바라볼 수는 없는 노릇이지요. 그 하느님의 사람은 그를 살릴 뿐 아니라 그의 가족들에게도 그를 돌려준 셈이 되는 것입니다.
겸손한 영혼은 하느님 앞에 서 있는 자신의 위치를 아는 영혼입니다. 한 마디로 하느님 앞에서는 우리가 내세울 만한 것이 아무것도 없습니다. 모든 것은 하느님으로부터 받은 것이기 때문이고 그분이 허락하시지 않았더라면 우리가 무언가 조금이라도 낫게 할 수 있는 것은 존재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헌데 이런 가운데 자신을 뽐내는 이들이 등장하기 시작합니다. 자신이 뭔가 잘 한 무엇으로 남들보다 낫다고 생각하기 시작합니다. 하느님이 허락하시지 않았더라면 아예 태어나지도 못했을 주제에 지금 자신이 ‘소유’하고 있는 모든 재산, 미모, 학력, 경력, 학위, 명예, 권력과 같은 모든 것이 마치 자기 스스로 이루어 낸 업적인 듯 생각하고 으스대는 이들이 있습니다. 하느님은 그의 모든 것을 아시면서, 그의 미천함의 바닥을 아시면서 그를 내버려 두십니다. 제 아무리 날고 기는 인간이라도 자신의 수명을 넘어서지는 못하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그런 교만한 이들을 통해서 참된 그리스도인들은 보다 더 겸손과 사랑을 훈련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렇게 영혼 안에 겸손과 사랑이 점점 완성되어가면 결국 하느님은 당신이 계획한 일에 그 영혼을 쓰시는 것입니다. 하느님이 계획하신 일이라는 것은 엄청나게 위대한 일이지만 우리의 시선으로는 전혀 그렇게 보이지 않을 것입니다. 힘들어하는 친구를 찾아가 그의 이야기를 경청하는 것이 하느님의 가장 위대한 일이었을 줄 누가 상상이나 하겠습니까? 그 힘들어하던 친구가 자살까지 생각하다가 하느님의 사람을 만나 그의 따스함을 체험하고 자살을 포기하고, 다시 힘을 내어 살아가 그의 온 가족이 하느님의 축복을 얻게 되는 그 미래의 일을 한낱 인간인 우리가 바라볼 수는 없는 노릇이지요. 그 하느님의 사람은 그를 살릴 뿐 아니라 그의 가족들에게도 그를 돌려준 셈이 되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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