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시간 고해를 주면서 하나 깨닫게 되는 것은 우리가 힘들어하는 이유는 대부분 구체적인 삶의 시련 때문이 아니라 관계와 정서적인 문제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그 누구도 자신이 하고 있는 일이 육체적으로 너무 힘들어서 삶이 힘든 게 아니라 삶의 부분 부분에서 서로간에 맺고 있는 관계 때문에 힘들어한다는 것입니다.
기본은 다음과 같이 요약됩니다.
“사랑 받고 싶다!”
“헌데 아무도 내가 바라는 대로 나를 사랑해주지 않는다.”
저마다 사랑을 받고 싶은데 그 누구도 자신이 바라는 대로 자신을 사랑해주지 않는 것이 문제인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대부분의 경우가 이 핵심에서 그다지 동떨어지지 않아 보입니다.
부모님은 나름 열심히 자녀를 돌보는데, 자녀는 그게 영 마음에 들지 않습니다. 남편은 나름 아내를 사랑하는데 아내로서는 남편이 무언가를 더 하기를 바랍니다. 우리는 삶의 환경에서 이미 많은 것을 누리고 있는데 우리는 그 삶의 환경에서 무언가를 늘 더 바랍니다. 늘 이런 식이지요. 한마디로 줄이면, ‘이든 저든 내 맘에 들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내 마음에 드는 세상, 사람들은 그것을 ‘천국’이라고 착각하는 것입니다. 모든 것이 내 마음대로 이루어지는 세상을 사람들은 자신의 천국으로 상정하고 그것을 추구하는 것이지요. 하지만 안타깝게도 그 천국은 타인에게는 지옥이 되어 버리고 마는 것입니다.
우리가 신앙인인 이유는 ‘하느님의 천국’을 찾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고해소에 들어오는 이들에게 사제가 소개해 주어야 할 단 한가지는 그들이 하느님의 천국을 찾는 법을 알도록 가르쳐주는 것입니다.
우리는 우리의 원의를 내려놓아야 합니다. 우리를 위해서 추구하는 것들을 잠시 내려놓고 하느님께서 주시려는 것을 바라보아야 합니다. 바로 거기에 모든 문제의 해결책이 있습니다.
하느님은 우리 눈에 좋은 것이든 우리 눈에 나쁜 것이든 모두를 우리를 위해서 마련하시는 분이십니다. 그래서 결국 그 모든 것은 우리에게 좋은 것입니다. 다만 우리가 지금 당장 바라보기에 마음에 들지 않을 뿐이지요. 모든 것은 좋은 것입니다. 심지어는 가장 나빠 보이는 일마저 그 안에 깃들어있는 하느님의 뜻이 존재하는 것입니다.
이 깨달음은 참으로 근본적인 것이며, 이를 올바로 깨닫는 사람은 사랑이 전혀 부족하지 않게 됩니다. 하느님으로부터 ‘영원히’ 사랑받는 사람이 되는 것이지요. 그러면 이 사람은 다른 구체적인 사람들의 사랑이 필요하지 않게 되고 꾸준히 사랑할 수 있게 됩니다.
그러나 이는 어디까지나 ‘신앙의 영역’입니다. 그래서 믿는 이들의 특권이라고 할 수 있지요. 물론 말로만 믿는 이들이 아니라 구체적인 삶으로 믿는 이들의 특권입니다. 믿는 이들에게는 끊임없이 시련이 다가옵니다. 왜냐하면 자신들이 지닌 신앙을 시험받을 필요가 있기 때문이지요.
최종적으로 우리 신앙인들은 다음과 같은 기본 구도를 가지게 됩니다.
“사랑 받고 싶다!”
“하느님이 나를 넘치게 사랑해 주신다!!”
“그러니 이제 하느님을 사랑하고 이웃을 사랑해야지.”
기본은 다음과 같이 요약됩니다.
“사랑 받고 싶다!”
“헌데 아무도 내가 바라는 대로 나를 사랑해주지 않는다.”
저마다 사랑을 받고 싶은데 그 누구도 자신이 바라는 대로 자신을 사랑해주지 않는 것이 문제인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대부분의 경우가 이 핵심에서 그다지 동떨어지지 않아 보입니다.
부모님은 나름 열심히 자녀를 돌보는데, 자녀는 그게 영 마음에 들지 않습니다. 남편은 나름 아내를 사랑하는데 아내로서는 남편이 무언가를 더 하기를 바랍니다. 우리는 삶의 환경에서 이미 많은 것을 누리고 있는데 우리는 그 삶의 환경에서 무언가를 늘 더 바랍니다. 늘 이런 식이지요. 한마디로 줄이면, ‘이든 저든 내 맘에 들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내 마음에 드는 세상, 사람들은 그것을 ‘천국’이라고 착각하는 것입니다. 모든 것이 내 마음대로 이루어지는 세상을 사람들은 자신의 천국으로 상정하고 그것을 추구하는 것이지요. 하지만 안타깝게도 그 천국은 타인에게는 지옥이 되어 버리고 마는 것입니다.
우리가 신앙인인 이유는 ‘하느님의 천국’을 찾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고해소에 들어오는 이들에게 사제가 소개해 주어야 할 단 한가지는 그들이 하느님의 천국을 찾는 법을 알도록 가르쳐주는 것입니다.
우리는 우리의 원의를 내려놓아야 합니다. 우리를 위해서 추구하는 것들을 잠시 내려놓고 하느님께서 주시려는 것을 바라보아야 합니다. 바로 거기에 모든 문제의 해결책이 있습니다.
하느님은 우리 눈에 좋은 것이든 우리 눈에 나쁜 것이든 모두를 우리를 위해서 마련하시는 분이십니다. 그래서 결국 그 모든 것은 우리에게 좋은 것입니다. 다만 우리가 지금 당장 바라보기에 마음에 들지 않을 뿐이지요. 모든 것은 좋은 것입니다. 심지어는 가장 나빠 보이는 일마저 그 안에 깃들어있는 하느님의 뜻이 존재하는 것입니다.
이 깨달음은 참으로 근본적인 것이며, 이를 올바로 깨닫는 사람은 사랑이 전혀 부족하지 않게 됩니다. 하느님으로부터 ‘영원히’ 사랑받는 사람이 되는 것이지요. 그러면 이 사람은 다른 구체적인 사람들의 사랑이 필요하지 않게 되고 꾸준히 사랑할 수 있게 됩니다.
그러나 이는 어디까지나 ‘신앙의 영역’입니다. 그래서 믿는 이들의 특권이라고 할 수 있지요. 물론 말로만 믿는 이들이 아니라 구체적인 삶으로 믿는 이들의 특권입니다. 믿는 이들에게는 끊임없이 시련이 다가옵니다. 왜냐하면 자신들이 지닌 신앙을 시험받을 필요가 있기 때문이지요.
최종적으로 우리 신앙인들은 다음과 같은 기본 구도를 가지게 됩니다.
“사랑 받고 싶다!”
“하느님이 나를 넘치게 사랑해 주신다!!”
“그러니 이제 하느님을 사랑하고 이웃을 사랑해야지.”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