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살을 먹고 내 피를 마시는 사람은 내 안에 머무르고, 나도 그 사람 안에 머무른다. (요한 6,56)
어느 수녀님에게 아주 재미난 일화를 들은 적이 있습니다.
“수녀원에서 수련기를 보내면서 수련장 수녀님이 가르쳐 주신 게, 늘 예수님과 팔짱을 끼고 함께 다닌다고 생각을 하라는 것이었어요. 헌데 화장실까지 함께 가기에는 좀 그렇잖아요? 그래서 화장실 갈 때는 화장실 문 밖에서 예수님에게 ‘여기 잠시만 기다리세요.’라고 말하고 화장실을 다녀오곤 했어요.”
우리가 성체를 모시는 것은 말 그대로 예수님과 함께 머물러 살기 위함입니다. 위의 요한의 복음 구절처럼 그분의 살을 먹고 피를 마시는 사람은 그분 안에 머무르고 주님도 그 안에 머무르시는 것입니다. 그러면 우리는 그분과 함께 살아가게 되는 것이지요.
미사를 마치고 나면 우리는 주님을 모시고 각자의 삶의 자리로 돌아가는 것입니다. 헌데 이를 형식적으로만 생각하고 버릇처럼 성체를 모시는 이들이 있습니다. 그리고 미사를 마치고 나면 때로는 세속 사람들보다 더 세속적인 삶의 모습을 드러내기도 하지요. 모여서 누군가를 험담한다던가 술을 진탕 퍼마신다던가 하는 모습을 드러내는 경우도 있습니다.
성체를 참되게 모셨는가 아닌가는 외적 형식을 준수했는가 아닌가가로 분별되는 것이 아니라 바로 그가 예수님과 함께 살고 있는 태도를 보이는가 아닌가로 자연스럽게 나타나는 것입니다. 아무리 공복재를 지키고 미사 직전에 고해소 에 들어갔다 하더라도 소용이 없습니다. 진정 믿음으로 성체를 받아모시는 사람은 삶이 변화되지 않을 수가 없습니다. 프란치스코 교황을 집에 모시고 그 자리에 없는 사람에 대한 험담을 늘어놓는 사람은 없을 것입니다.
어느 수녀님에게 아주 재미난 일화를 들은 적이 있습니다.
“수녀원에서 수련기를 보내면서 수련장 수녀님이 가르쳐 주신 게, 늘 예수님과 팔짱을 끼고 함께 다닌다고 생각을 하라는 것이었어요. 헌데 화장실까지 함께 가기에는 좀 그렇잖아요? 그래서 화장실 갈 때는 화장실 문 밖에서 예수님에게 ‘여기 잠시만 기다리세요.’라고 말하고 화장실을 다녀오곤 했어요.”
우리가 성체를 모시는 것은 말 그대로 예수님과 함께 머물러 살기 위함입니다. 위의 요한의 복음 구절처럼 그분의 살을 먹고 피를 마시는 사람은 그분 안에 머무르고 주님도 그 안에 머무르시는 것입니다. 그러면 우리는 그분과 함께 살아가게 되는 것이지요.
미사를 마치고 나면 우리는 주님을 모시고 각자의 삶의 자리로 돌아가는 것입니다. 헌데 이를 형식적으로만 생각하고 버릇처럼 성체를 모시는 이들이 있습니다. 그리고 미사를 마치고 나면 때로는 세속 사람들보다 더 세속적인 삶의 모습을 드러내기도 하지요. 모여서 누군가를 험담한다던가 술을 진탕 퍼마신다던가 하는 모습을 드러내는 경우도 있습니다.
성체를 참되게 모셨는가 아닌가는 외적 형식을 준수했는가 아닌가가로 분별되는 것이 아니라 바로 그가 예수님과 함께 살고 있는 태도를 보이는가 아닌가로 자연스럽게 나타나는 것입니다. 아무리 공복재를 지키고 미사 직전에 고해소 에 들어갔다 하더라도 소용이 없습니다. 진정 믿음으로 성체를 받아모시는 사람은 삶이 변화되지 않을 수가 없습니다. 프란치스코 교황을 집에 모시고 그 자리에 없는 사람에 대한 험담을 늘어놓는 사람은 없을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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