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에게서 사랑받으려고 하면 언젠가는 반드시 실망하게 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랑할 수 있어야 사랑이 완성되는 것이지요. 허나 그러기 위해서는 ‘신앙’이라는 것이 필수적입니다. 우리가 ‘그럼에도 불구하고’를 넘어서기 위해서는 다른 사랑의 소스가 필요하기 때문이지요. 헌데 그 사랑의 소스를 또다른 인간에게서 찾으려고 하면 또다시 같은 상황이 펼쳐지는 것입니다.
그러나 사람들은 이 ‘신앙’이라는 것에서 사랑을 얻는 법을 잘 모릅니다. 우리는 ‘보이는 사랑’에 익숙하기 때문이지요. 누군가 말을 해 주고, 누군가 바라봐주고, 누군가 들어줘야 위로받는다고 생각하면서 참된 위로이신 분의 존재에 대해서 자꾸만 잊어가는 것입니다.
뿐만 아니라 우리의 죄악과 욕심도 작용을 합니다. 세상 것을 온통 소유하려는 탐욕이 우리에게서 영적인 것을 감지하는 능력을 상실하게 만들어 버리는 것이지요. 성경에서 ‘장님’과 관련한 일화들을 잘 살펴보면 예수님이 단순히 그의 육신의 눈을 열어주기 위해서 그 기적을 행하고 있는 게 아니라는 것을 알 수 있게 됩니다.
우리는 모두 장님들입니다. 마땅히 보아야 할 것들을 보지 못하고 엉뚱한 것에 시선이 팔려 있으니까요. 우리는 장님들입니다. 그러나 눈이 먼 줄도 모르는 장님들이지요. 차라리 육신의 눈이 멀었다면 지팡이라도 짚고 다닐텐데 마음이 눈이 멀어 눈이 먼 줄 모르는 것입니다. 의심하고 다투고 싸우고 하면서도 자신에게 전혀 문제가 없고 모두 남 탓이라고만 생각하지요.
주님 저희의 눈을 열어 주소서. 저희가 올바로 바라보게 하소서. 우리를 위로하는 것이 다른 무엇이 아니라 바로 당신이심을 깨닫고 오직 당신만을 바라보게 하소서.
그러나 사람들은 이 ‘신앙’이라는 것에서 사랑을 얻는 법을 잘 모릅니다. 우리는 ‘보이는 사랑’에 익숙하기 때문이지요. 누군가 말을 해 주고, 누군가 바라봐주고, 누군가 들어줘야 위로받는다고 생각하면서 참된 위로이신 분의 존재에 대해서 자꾸만 잊어가는 것입니다.
뿐만 아니라 우리의 죄악과 욕심도 작용을 합니다. 세상 것을 온통 소유하려는 탐욕이 우리에게서 영적인 것을 감지하는 능력을 상실하게 만들어 버리는 것이지요. 성경에서 ‘장님’과 관련한 일화들을 잘 살펴보면 예수님이 단순히 그의 육신의 눈을 열어주기 위해서 그 기적을 행하고 있는 게 아니라는 것을 알 수 있게 됩니다.
우리는 모두 장님들입니다. 마땅히 보아야 할 것들을 보지 못하고 엉뚱한 것에 시선이 팔려 있으니까요. 우리는 장님들입니다. 그러나 눈이 먼 줄도 모르는 장님들이지요. 차라리 육신의 눈이 멀었다면 지팡이라도 짚고 다닐텐데 마음이 눈이 멀어 눈이 먼 줄 모르는 것입니다. 의심하고 다투고 싸우고 하면서도 자신에게 전혀 문제가 없고 모두 남 탓이라고만 생각하지요.
주님 저희의 눈을 열어 주소서. 저희가 올바로 바라보게 하소서. 우리를 위로하는 것이 다른 무엇이 아니라 바로 당신이심을 깨닫고 오직 당신만을 바라보게 하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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