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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엇이 일입니까? 왜 일은 ‘놀이’와 다른 걸까요? 놀이도 만만치않게 힘든 활동인데 왜 우리는 놀이처럼 일하지 못하고, 또 반대로 놀이를 일이라고 생각지 않는 걸까요?

사실 모든 것은 우리의 마음에 달린 문제입니다. 우리가 받아들이기에 달린 문제이지요. 그리고 핵심은 ‘내가 원하는 행위’라는 것입니다. 내가 원하는 행위는 놀이가 되고, 내가 원치 않는 행위는 일이 되는 것이지요. 그것이 무엇을 생산하든 말든 그건 부차적인 문제입니다. 때로는 놀이를 통해서도 훌륭한 것들이 생산되고는 하니까요.

그럼 ‘내가 원하는 행위’가 아닌 것은 왜 그런 것일까요? 그것은 다른 이의 의지이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일을 싫어하는 이유는 다른 이들의 의지가 나를 통해서 작용하기 때문입니다. 나는 돈을 벌고 싶기는 하나 지금 하고 있는 일을 하고 싶은 생각은 별로 없는 것이지요. 그래서 일이 힘들어지는 것입니다. 그러나 지금 하는 일이 자신이 정말 하고 싶은 일이었다면 일은 거의 ‘놀이’의 수준으로 변하게 됩니다. 정말 기쁘고 활기차게 일할 수 있는 것이지요.

그리스도인들이 의욕이 없는 이유는 자신의 신앙생활을 ‘일’로 취급하기 때문입니다. 왜냐하면 그것은 ‘하느님의 의지’가 가득 담긴 것이고 실제 우리들의 의지는 그와는 전혀 다르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주일에 잠을 늘어지게 자고 싶은데 하느님이 우리를 주일에 나오게 한다고 생각해서 주일 미사가 싫어지는 것입니다. 그러나 과연 그럴까요?

하느님의 의지는 무엇일까요? 하느님은 우리를 통해서 무엇을 원하시는 것일까요?

사실 하느님의 뜻대로 일하는 사람은 거의 없다고 보아도 무방합니다. 우리가 신앙생활을 통해서 이루는 것들은 대부분 우리가 하느님의 자녀로서 최소한으로 해야 하는 것들 뿐입니다. 그것마저 하지 않으면 하느님의 자녀는 커녕 아무것도 아닌 존재가 되는 것이지요.

하느님이 진정으로 원하시는 것은 우리의 이기적인 신앙생활이 아니라 추수밭의 일꾼들입니다. 다른 이들에게 복음을 전하고, 복음을 살지 못하는 이들이 복음을 살게 도와주는 것이 하느님이 진정으로 원하시는 것이지요. 그것을 위해서 당신 자녀들의 도움이 필요한 것이고 거기에 우리의 ‘일’이 있는 것입니다.

누군가는 그마저도 기쁘게 하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누군가는 최소한의 것마저도 억지로 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그러니 그들이 훗날 받게 될 상급의 차이는 어마어마한 것이 되겠지요. 첫째가 꼴찌가 되고 꼴찌가 첫째가 되는 이들이 너무나도 많을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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