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마음에는 작은, 하지만 엄청난 크기의 창고가 있습니다. 우리는 이 마음 창고에 우리가 일상에서 받아들이는 것들을 집어넣곤 하지요. 우리가 보고 듣고 느끼는 모든 것들이 이 창고 안으로 들어갑니다.
헌데 이 창고 안으로 들어갈 때에 늘 거쳐가는 관문이 있는데 바로 우리의 의식입니다. 우리의 의식을 거치지 않고 들어가는 것은 무의식의 창고로 들어가고 우리의 의식을 거치는 것은 우리의 의식의 창고로 들어가지요. 헌데 우리의 의식을 거칠 때에는 언제나 특정한 종류의 ’해석’이 가해지게 됩니다.
크게 나누어보면 긍정적인 해석과 부정적인 해석으로 나누어 볼 수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가 바라보고 느끼는 모든 것들은 이 의식의 두가지 해석을 통해서 결국 우리 안에 자리잡게 되는 것이지요. 그리고 우리는 이를 통해서 행복과 불행을 느끼게 되는 것입니다.
아무리 좋은 것이라 해도 ‘부정적’으로 받아들일 수 있습니다. 정말 멋지고 아름다운 사람을 보았는데 그것을 받아들일 때에 그 자체로 아름답게 받아들이는 게 아니라 ‘시기심’으로 받아들이면 그 이미지는 나에게 부정적인 요소로 남아있게 되는 것이지요. 누군가 정말 좋은 말을 해 주었는데 내가 그것을 받아들일 때에 ‘혐오감’으로 받아들이면 그건 나에게 부정적인 요소로 남는 것입니다.
반대의 경우도 있지요. 정말 최악의 상황이 발생했는데 그것을 하느님의 뜻으로 받아들이고 극복하려고 노력하는 중에 오히려 나에게 인내심을 전해 준다면 그것은 나에게 긍정적인 기억이 됩니다. 정신 없이 바쁜 중에도 늘 건강을 허락하시는 하느님에게 감사를 드릴 수 있다면 그 모든 시간들이 긍정의 요소로 나에게 작용을 하는 것이지요.
그렇게 저장된 마음의 창고의 요소들은 다시 우리의 생각과 말과 행동으로 드러나게 됩니다. 우리는 가진 것을 줄 수 밖에 없는 존재들입니다. 내가 가지고 있지 못한 것을 전해줄 수는 없지요. 그래서 긍정적인 사람과 부정적인 사람이 등장하게 되는 것입니다.
과연 우리는 우리의 일상을 어떻게 해석하고 어떻게 저장하고 있을까요? 스스로 성찰해 보아야 할 문제입니다.
헌데 이 창고 안으로 들어갈 때에 늘 거쳐가는 관문이 있는데 바로 우리의 의식입니다. 우리의 의식을 거치지 않고 들어가는 것은 무의식의 창고로 들어가고 우리의 의식을 거치는 것은 우리의 의식의 창고로 들어가지요. 헌데 우리의 의식을 거칠 때에는 언제나 특정한 종류의 ’해석’이 가해지게 됩니다.
크게 나누어보면 긍정적인 해석과 부정적인 해석으로 나누어 볼 수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가 바라보고 느끼는 모든 것들은 이 의식의 두가지 해석을 통해서 결국 우리 안에 자리잡게 되는 것이지요. 그리고 우리는 이를 통해서 행복과 불행을 느끼게 되는 것입니다.
아무리 좋은 것이라 해도 ‘부정적’으로 받아들일 수 있습니다. 정말 멋지고 아름다운 사람을 보았는데 그것을 받아들일 때에 그 자체로 아름답게 받아들이는 게 아니라 ‘시기심’으로 받아들이면 그 이미지는 나에게 부정적인 요소로 남아있게 되는 것이지요. 누군가 정말 좋은 말을 해 주었는데 내가 그것을 받아들일 때에 ‘혐오감’으로 받아들이면 그건 나에게 부정적인 요소로 남는 것입니다.
반대의 경우도 있지요. 정말 최악의 상황이 발생했는데 그것을 하느님의 뜻으로 받아들이고 극복하려고 노력하는 중에 오히려 나에게 인내심을 전해 준다면 그것은 나에게 긍정적인 기억이 됩니다. 정신 없이 바쁜 중에도 늘 건강을 허락하시는 하느님에게 감사를 드릴 수 있다면 그 모든 시간들이 긍정의 요소로 나에게 작용을 하는 것이지요.
그렇게 저장된 마음의 창고의 요소들은 다시 우리의 생각과 말과 행동으로 드러나게 됩니다. 우리는 가진 것을 줄 수 밖에 없는 존재들입니다. 내가 가지고 있지 못한 것을 전해줄 수는 없지요. 그래서 긍정적인 사람과 부정적인 사람이 등장하게 되는 것입니다.
과연 우리는 우리의 일상을 어떻게 해석하고 어떻게 저장하고 있을까요? 스스로 성찰해 보아야 할 문제입니다.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