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동네에는 니뇨 헤수스(Niño Jesus 아기 예수님)라는 특정한 상이 있고 그에 관한 신심이 굉장히 강합니다. 마침 어제 한 교리교사의 어머니가 본당을 찾아와서 커피를 한 대 대접하는 중에 그 자매가 니뇨 헤수스에 신심을 지니고 있다고 해서 물어 보았습니다.
- 니뇨 헤수스 참 유명하던데 구체적인 신심이 어떤 것인가요?
- 사람은 믿고 간절히 청하면 얻는다잖아요. 니뇨 헤수스에 신심을 가진 사람들은 그런 바램으로 참 많은 봉헌을 해요.
- 헌데 왜 하필이면 니뇨 헤수스이지요? 우리는 이미 교회 안에서 예수님을 모시고 있는데요.
- (묵묵부답)
다른 교리교사의 말을 빌자면 마약 거래상들도 이 니뇨 헤수스에 대한 신심이 굉장히 크다고 합니다. 그들의 일이 잘 되게 해 달라고 엄청난 봉헌을 한다는 것이지요.
강한 믿음을 가지는 것은 참으로 좋은 것입니다. 특히 남미는 민중 신앙이 엄청납니다. 우리가 미개하다고 단순히 치부할 수만은 없습니다. 그들의 신앙심은 마땅히 존중받아야 하는 것이지요. 하지만 그 방향성은 올바로 잡아 주어야 합니다. 사실 세상 어딜가나 민중 신앙이 강한 곳은 올바른 방향성을 제시해주는 것이 필요합니다. 그들의 신앙이 참된 하느님을 향한 길로 접어들 수 있도록 바로잡아주는 작업은 참으로 중요한 일입니다.
예수님은 우리가 ‘돈을 엄청 많이 버는 부자 되게 해주겠다’고 약속한 적이 없습니다. 오히려 당신의 십자가를 가르치셨고 가진 것을 나누어 가난한 이를 도와 주라고 가르치셨지요. 우리가 살아가는 데에 필요한 것을 갖추었다면 그때부터는 가난한 이를 도울 생각을 해야 합니다.
하지만 사람들은 자신의 욕심과 신심을 올바르게 구분하지 못합니다. 참된 신심은 사람이 힘든 시련 속에서도 용기를 잃지 않고 하느님을 찾게 도와주는 반면, 욕심은 그저 자신의 지상 삶의 보다 나은 편의를 추구하게 만들어 버립니다. 아이가 죽을 지경이라 어디에도 기댈 곳이 없는 엄마가 하느님을 찾는다면 하느님은 그 어미를 어여삐 여겨 아이를 돌려주실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집이 이미 충분히 넓고 가족 구성원들이 모여 살기에 적합한데도 자신의 허영심을 위해서 더 넓은 아파트를 구하느라 돈이 부족해서 하느님 앞에 나아와 헛된 청을 드리는 것은 바람직한 모습이 아니지요.
남미의 민중 신앙의 강력함은 실제로 많은 기적을 불러 일으키기도 하지만 반대의 방향으로 사람들의 눈을 더욱 멀게 하기도 합니다. 이러한 가운데 사제들이 마음을 모아서 사람들을 교육하지 않으면 이 강력한 신심은 곧잘 길을 잃어버리고 맙니다. 헌데 사제도 가난한 나머지 사람들이 가져다주는 예물에 입맛을 다시기 시작한다면 참으로 안타까운 일이 벌어지기 시작하는 것이지요. 돈 버는 맛에 일하는 사제와 돈 벌 욕심에 봉헌하는 신자들이 맞물려 돌아가기 시작하면 과연 마지막 날에 그 교회에서 참된 믿음을 찾아볼 수 있을런지요?
- 니뇨 헤수스 참 유명하던데 구체적인 신심이 어떤 것인가요?
- 사람은 믿고 간절히 청하면 얻는다잖아요. 니뇨 헤수스에 신심을 가진 사람들은 그런 바램으로 참 많은 봉헌을 해요.
- 헌데 왜 하필이면 니뇨 헤수스이지요? 우리는 이미 교회 안에서 예수님을 모시고 있는데요.
- (묵묵부답)
다른 교리교사의 말을 빌자면 마약 거래상들도 이 니뇨 헤수스에 대한 신심이 굉장히 크다고 합니다. 그들의 일이 잘 되게 해 달라고 엄청난 봉헌을 한다는 것이지요.
강한 믿음을 가지는 것은 참으로 좋은 것입니다. 특히 남미는 민중 신앙이 엄청납니다. 우리가 미개하다고 단순히 치부할 수만은 없습니다. 그들의 신앙심은 마땅히 존중받아야 하는 것이지요. 하지만 그 방향성은 올바로 잡아 주어야 합니다. 사실 세상 어딜가나 민중 신앙이 강한 곳은 올바른 방향성을 제시해주는 것이 필요합니다. 그들의 신앙이 참된 하느님을 향한 길로 접어들 수 있도록 바로잡아주는 작업은 참으로 중요한 일입니다.
예수님은 우리가 ‘돈을 엄청 많이 버는 부자 되게 해주겠다’고 약속한 적이 없습니다. 오히려 당신의 십자가를 가르치셨고 가진 것을 나누어 가난한 이를 도와 주라고 가르치셨지요. 우리가 살아가는 데에 필요한 것을 갖추었다면 그때부터는 가난한 이를 도울 생각을 해야 합니다.
하지만 사람들은 자신의 욕심과 신심을 올바르게 구분하지 못합니다. 참된 신심은 사람이 힘든 시련 속에서도 용기를 잃지 않고 하느님을 찾게 도와주는 반면, 욕심은 그저 자신의 지상 삶의 보다 나은 편의를 추구하게 만들어 버립니다. 아이가 죽을 지경이라 어디에도 기댈 곳이 없는 엄마가 하느님을 찾는다면 하느님은 그 어미를 어여삐 여겨 아이를 돌려주실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집이 이미 충분히 넓고 가족 구성원들이 모여 살기에 적합한데도 자신의 허영심을 위해서 더 넓은 아파트를 구하느라 돈이 부족해서 하느님 앞에 나아와 헛된 청을 드리는 것은 바람직한 모습이 아니지요.
남미의 민중 신앙의 강력함은 실제로 많은 기적을 불러 일으키기도 하지만 반대의 방향으로 사람들의 눈을 더욱 멀게 하기도 합니다. 이러한 가운데 사제들이 마음을 모아서 사람들을 교육하지 않으면 이 강력한 신심은 곧잘 길을 잃어버리고 맙니다. 헌데 사제도 가난한 나머지 사람들이 가져다주는 예물에 입맛을 다시기 시작한다면 참으로 안타까운 일이 벌어지기 시작하는 것이지요. 돈 버는 맛에 일하는 사제와 돈 벌 욕심에 봉헌하는 신자들이 맞물려 돌아가기 시작하면 과연 마지막 날에 그 교회에서 참된 믿음을 찾아볼 수 있을런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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