똥이라도 제 역할이 있습니다. 똥은 거름이 되어서 아름다운 꽃을 자라나는 데에 도움을 주지요. 우리가 늘 아름답고 좋은 환경에서만 생활하게 될거라고 착각하지 마십시오. 우리는 맑음과 혼탁함이 공존하는 곳에서 살아가게 됩니다.
저마다의 자유로 맑음과 혼탁함 사이에서 무엇을 위해 살아갈 것인지 결정하게 되는 것입니다. 맑음 사이에 살아가는 이들은 혼탁함의 도움을 얻게 될 것이고, 혼탁함에 머무는 이들은 원하면 맑음으로 나아올 수 있습니다.
하느님은 모든 존재의 이유를 아시는 분이십니다. 그리고 전능하신 그분께서는 가장 추악한 것을 통해서도 선을 이루시는 분이십니다. 그러나 이 표현이 그 추악한 것이 곧 선이라는 의미는 절대로 아닙니다. 추악한 것은 추악할 뿐입니다. 하느님은 그것을 비료나 세제처럼 사용해서 아름다운 것을 더욱 아름답게 가꿀 뿐이지요.
금도 ‘정련’이 필요합니다. 정련을 위해서는 불의 시련이 필요한 법이지요. 그 불을 때우려면 적절한 땔감이 필요한 법이고 그 땔감들, 타서 없어져버릴 것들이 바로 그 추악한 것들이 되는 것입니다. 그러나 그 운명은 태초부터 정해진 것이 아니라 그들 스스로 정한 것입니다. 사람에게는 누구나 자유의지가 존재하니까요. 이는 ‘신비’의 영역입니다.
망하라고 정해진 인간은 없습니다. 제가 망하는 것이지요. 누구나 선을 행할 수 있는데 그것을 거부하고 악으로 기울기만 하고, 또 선으로 다시 초대하는 손길마저도 거부를 하니 그는 악에 머무르게 되는 것입니다. 그리고 땔감으로 쓰이고 사라지는 것이지요.
하느님은 전능하신 분이십니다. 우리가 하느님의 전능을 연상해 낸 것이 아니라 그분의 전능이 우리를 감싸쥐고 계시는 것입니다. 그러니 하느님을 가지고 놀 생각을 얼른 내려두고 우리가 그분 뜻에 따라서 살 생각을 해야 합니다.
저마다의 자유로 맑음과 혼탁함 사이에서 무엇을 위해 살아갈 것인지 결정하게 되는 것입니다. 맑음 사이에 살아가는 이들은 혼탁함의 도움을 얻게 될 것이고, 혼탁함에 머무는 이들은 원하면 맑음으로 나아올 수 있습니다.
하느님은 모든 존재의 이유를 아시는 분이십니다. 그리고 전능하신 그분께서는 가장 추악한 것을 통해서도 선을 이루시는 분이십니다. 그러나 이 표현이 그 추악한 것이 곧 선이라는 의미는 절대로 아닙니다. 추악한 것은 추악할 뿐입니다. 하느님은 그것을 비료나 세제처럼 사용해서 아름다운 것을 더욱 아름답게 가꿀 뿐이지요.
금도 ‘정련’이 필요합니다. 정련을 위해서는 불의 시련이 필요한 법이지요. 그 불을 때우려면 적절한 땔감이 필요한 법이고 그 땔감들, 타서 없어져버릴 것들이 바로 그 추악한 것들이 되는 것입니다. 그러나 그 운명은 태초부터 정해진 것이 아니라 그들 스스로 정한 것입니다. 사람에게는 누구나 자유의지가 존재하니까요. 이는 ‘신비’의 영역입니다.
망하라고 정해진 인간은 없습니다. 제가 망하는 것이지요. 누구나 선을 행할 수 있는데 그것을 거부하고 악으로 기울기만 하고, 또 선으로 다시 초대하는 손길마저도 거부를 하니 그는 악에 머무르게 되는 것입니다. 그리고 땔감으로 쓰이고 사라지는 것이지요.
하느님은 전능하신 분이십니다. 우리가 하느님의 전능을 연상해 낸 것이 아니라 그분의 전능이 우리를 감싸쥐고 계시는 것입니다. 그러니 하느님을 가지고 놀 생각을 얼른 내려두고 우리가 그분 뜻에 따라서 살 생각을 해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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