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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가지 면담

어제 성경 강의를 마치고 한 부부가 저를 따로 만나고 싶어했습니다. 자신의 아이가 자꾸 거짓말을 하고 엇나간다는 것이었지요.

‘한 사람은 주변의 영향을 받지요. 특히나 어린 아이 때에는 거의 부모에게 전적으로 의지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에요. 그래서 부모의 상태에 따라서 아이의 정서도 결정이 되는 셈이지요. 부모가 매일같이 다투는 집의 아이가 정상일 리가 없지요. 그러니 아이의 문제점은 무엇보다도 먼저 부모님의 삶을 성찰하는 데서부터 그 해결책을 찾아 나가야 해요.

아이를 줘다 팰 수 있어요. 그러면 그 순간 아이는 조용해 질 거예요. 그러나 그건 근본적인 해결책이 되지 못해요. 호스에 물이 새는데 수도를 잠그지 않고 힘으로 그 구멍을 막으려고만 들면 그건 근본적인 해결책이 아니지요. 수도꼭지를 찾아서 그걸 잠궈야 비로소 일이 진정되는 거예요.

하지만 아이가 자라나면서 친구들을 사귈 수 있고 그 친구들의 영향을 받을 수도 있을 거예요. 그러니 부모님으로서는 마땅히 아이를 ‘알아야’ 하는거죠. 아이가 어떤 친구와 어울리고 무엇을 하고 다니는지 부모님으로서 관심을 갖고 애정으로 다가설 필요가 있어요.

결국 모든 것을 치유하는 것, 올바로 만드는 것은 ‘사랑’이에요. 모쪼록 아이에게 지극한 사랑으로 다가설 수 있기를 바래요.’

그 상담을 마치고 나서는 바로 다른 아주머니와의 상담이 이어졌습니다. 봉사자로서 공동체에 일하는데 어느 성격이 이상한 자매 때문에 심하게 마음이 아팠다고 하더군요. 하지만 제가 그동안 가르쳐 온 대로 반발하거나 복수심을 품지 않고 열심히 참고 가라앉혔다고 합니다. 그래서 이런 이야기를 해 주었습니다.

‘아마 신앙생활을 하면서 그런 종류의 힘든 일은 끊이지 않을 거예요. 우리 주변에는 늘 두 가지 손길이 있어요. 하나는 악마의 손길이고 다른 하나는 하느님의 손길이지요. 헌데 악마는 우리가 좋아하는 걸 알아서 그의 손길은 사탕발림이 되어 있어요. 그래서 언뜻 달콤하게 느껴지지요. 어두움의 길로 초대하는 손길은 언제나 우리가 좋아하는 것으로 둘러싸여 있어서 그 본질을 파악하기 힘들어요.

반면 하느님의 손길은 우리에게 ‘시련’으로 다가오지요. 그래서 그 고통이 싫어서 외면하는 거예요. 아이에게 숙제를 내어주면 그 아이에게 숙제는 엄청난 시련으로 다가올 거예요. 하지만 그 숙제를 마치고 나면 자신에게 그 숙제를 해결할 능력이 생기는 거지요. 그래서 하느님의 손길은 우리에게 언뜻 부정적인 느낌으로 다가오지만 그것을 붙잡으면 우리를 참된 길로 이끌어주는 거예요. 잊지 마시길 바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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