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녀원 미사를 다녀왔습니다. 성모 승천 대축일을 맞아 미사를 드리면서 성모님의 영성에 대해서 설명했지요.
“우리는 의자의 구조에 대해서 알 수 있습니다. 그것의 재료가 무엇이고 어떻게 조립되는지 알지요. 하지만 휴대폰의 구조에 대해서는 세세하게 다 알지는 못합니다. 그러나 그것을 사용하지요. 마찬가지로 우리가 이해할 수 있는 하느님의 영역이 있고 우리가 이해할 수 없는 영역이 있습니다. 그것을 ‘신비’라고 부르지요. 그래서 신앙도 신비이고, 사랑도 신비이고, 심지어는 죄도 신비인 것입니다. 우리는 우리가 할 수 있는 선에서 이해할 수 있지만 우리의 하찮은 능력이 이해할 수 없는 영역도 받아들일 줄 알아야 하는 것이지요.
묵시록에는 참으로 다양한 묘사가 등장합니다. 그런 묘사들을 이해하는 방법은 신비를 대하는 방법으로, 즉 보다 깊은 신앙을 바탕으로 한 내적 시각으로 그것을 바라보는 것이지요. 성모님의 머리 위의 별 열두개가 달린 관, 태양의 옷 등은 단순히 장식용이 아니라 성모님의 다양한 덕성을 형상화한 것입니다.
“태양을 입고 발밑에 달을 두고 머리에 열두 개 별로 된 관을 쓴 여인이 나타난 것입니다.” (묵시 12,1)
우리는 이 내적인 시각으로 신비로서 묵시록을 읽어야 합니다. 하지만 그러기 위해서는 많은 훈련이 필요하지요. 그래서 많은 사람들이 묵시록을 읽고 오해를 하는 것입니다. 그 미스터리한 묘사를 자신이 이미 알고 있는 세상의 무엇으로 치환해서 이해하려고 하니 엉뚱한 이해가 생겨나는 것이지요.
이제 복음으로 넘어갑시다. 세례자 요한이 예수님을 만나 기뻐 뛰놀고, 엘리사벳이 마리아를 만나서 기뻐 합니다. 우리는 우리 맘에 드는 무언가를 마주할 때에 기쁨을 느끼지요. 그리고 반대로 우리가 싫어하는 무언가를 대할 때에는 거부감을 느낍니다. 내가 싫은 사람은 근처에만 와도 괜시리 머리가 아프고 소화가 잘 안되는 기분입니다.
그렇다면 엘리사벳은 어머니를 만나 왜 기뻐했을까요? 과연 성모님의 어떤 부분이 마음에 드신 것일까요? 과연 우리는 성모님의 찬미가에서 그 이유를 찾아볼 수 있습니다.
성모님은 겸손하셨습니다.
“그분께서 당신 종의 비천함을 굽어보셨기 때문입니다.” (루카 1,48)
그리고 나아가 그 겸손의 영성을 지니고 있었습니다.
“그분께서는 당신 팔로 권능을 떨치시어, 마음속 생각이 교만한 자들을 흩으셨습니다. 통치자들을 왕좌에서 끌어내리시고, 비천한 이들을 들어 높이셨으며, 굶주린 이들을 좋은 것으로 배불리시고, 부유한 자들을 빈손으로 내치셨습니다.” (루카 1,51-53)
엘리사벳은 이런 성모님과의 만남을 기뻐했습니다. 성모님이 화려하거나 아름다워서가 아니라 이런 내면의 깊이를 지닌 분이셨기 때문입니다. 아마 성모님을 세상에서 만난다면 우리는 그분을 알아보지 못할지도 모릅니다. 왜냐면 당신은 아주 소박한 차림새로 아무도 관심갖지 않는 곳에서 빨래를 하고 있거나 요리를 하고 계실 것이기 때문입니다. 별을 줄줄이 단 관을 쓰고 태양의 옷을 입은 여인은 다만 그분의 영적인 거룩함을 형상화한 것이고 훗날 우리가 하늘나라에서 만나뵙게 될 모습일 뿐인 것이지요.
우리는 과연 이런 성모님을 사랑하고 있을까요? 우리는 성모님의 이 깊은 영성을 올바로 이해하고 있는 걸까요? 아니면 반대로 여전히 세상의 어느 부분을 사랑하고 있는 것일까요? 우리는 높아지고 더 멋있어지고 더 부유해지고 더 유명해지기를 바라고 있는 건 아닐까요?
세상과 하느님을 동시에 사랑하는 사람은 없습니다. 한 쪽을 사랑하면 다른 한 쪽을 무시하게 마련입니다. 우리는 신앙인이고 나아가서 부름받은 이들입니다. 하느님은 당신의 일을 하시기 위해서 특별히 우리를 부르신 것이지요. 우리는 다만 ‘예’ 하고 응답하기만 하면 됩니다. 모쪼록 우리 안의 세상을 향한 움직임을 걷어내고 하느님을 향해서 걸어나갈 수 있었으면 합니다.”
볼리비아 전국 각지에서 분원장 수녀님들이 모인 자리였습니다. 물론 위의 내용과 더불어서 수녀님들에게 부탁하고 싶은 말을 잔뜩 했습니다. 미사가 끝나고 가진 간단한 다과회 자리에서 또 기회가 닿는 대로 가르쳤습니다. 우리가 지녀야 할 사명에 대해서 세상을 향해서 우리가 마땅히 이루어 내어야 할 일에 대해서 열심히 가르쳤습니다. 모쪼록 거룩한 수녀님들이 되길 바랄 뿐입니다.
“우리는 의자의 구조에 대해서 알 수 있습니다. 그것의 재료가 무엇이고 어떻게 조립되는지 알지요. 하지만 휴대폰의 구조에 대해서는 세세하게 다 알지는 못합니다. 그러나 그것을 사용하지요. 마찬가지로 우리가 이해할 수 있는 하느님의 영역이 있고 우리가 이해할 수 없는 영역이 있습니다. 그것을 ‘신비’라고 부르지요. 그래서 신앙도 신비이고, 사랑도 신비이고, 심지어는 죄도 신비인 것입니다. 우리는 우리가 할 수 있는 선에서 이해할 수 있지만 우리의 하찮은 능력이 이해할 수 없는 영역도 받아들일 줄 알아야 하는 것이지요.
묵시록에는 참으로 다양한 묘사가 등장합니다. 그런 묘사들을 이해하는 방법은 신비를 대하는 방법으로, 즉 보다 깊은 신앙을 바탕으로 한 내적 시각으로 그것을 바라보는 것이지요. 성모님의 머리 위의 별 열두개가 달린 관, 태양의 옷 등은 단순히 장식용이 아니라 성모님의 다양한 덕성을 형상화한 것입니다.
“태양을 입고 발밑에 달을 두고 머리에 열두 개 별로 된 관을 쓴 여인이 나타난 것입니다.” (묵시 12,1)
우리는 이 내적인 시각으로 신비로서 묵시록을 읽어야 합니다. 하지만 그러기 위해서는 많은 훈련이 필요하지요. 그래서 많은 사람들이 묵시록을 읽고 오해를 하는 것입니다. 그 미스터리한 묘사를 자신이 이미 알고 있는 세상의 무엇으로 치환해서 이해하려고 하니 엉뚱한 이해가 생겨나는 것이지요.
이제 복음으로 넘어갑시다. 세례자 요한이 예수님을 만나 기뻐 뛰놀고, 엘리사벳이 마리아를 만나서 기뻐 합니다. 우리는 우리 맘에 드는 무언가를 마주할 때에 기쁨을 느끼지요. 그리고 반대로 우리가 싫어하는 무언가를 대할 때에는 거부감을 느낍니다. 내가 싫은 사람은 근처에만 와도 괜시리 머리가 아프고 소화가 잘 안되는 기분입니다.
그렇다면 엘리사벳은 어머니를 만나 왜 기뻐했을까요? 과연 성모님의 어떤 부분이 마음에 드신 것일까요? 과연 우리는 성모님의 찬미가에서 그 이유를 찾아볼 수 있습니다.
성모님은 겸손하셨습니다.
“그분께서 당신 종의 비천함을 굽어보셨기 때문입니다.” (루카 1,48)
그리고 나아가 그 겸손의 영성을 지니고 있었습니다.
“그분께서는 당신 팔로 권능을 떨치시어, 마음속 생각이 교만한 자들을 흩으셨습니다. 통치자들을 왕좌에서 끌어내리시고, 비천한 이들을 들어 높이셨으며, 굶주린 이들을 좋은 것으로 배불리시고, 부유한 자들을 빈손으로 내치셨습니다.” (루카 1,51-53)
엘리사벳은 이런 성모님과의 만남을 기뻐했습니다. 성모님이 화려하거나 아름다워서가 아니라 이런 내면의 깊이를 지닌 분이셨기 때문입니다. 아마 성모님을 세상에서 만난다면 우리는 그분을 알아보지 못할지도 모릅니다. 왜냐면 당신은 아주 소박한 차림새로 아무도 관심갖지 않는 곳에서 빨래를 하고 있거나 요리를 하고 계실 것이기 때문입니다. 별을 줄줄이 단 관을 쓰고 태양의 옷을 입은 여인은 다만 그분의 영적인 거룩함을 형상화한 것이고 훗날 우리가 하늘나라에서 만나뵙게 될 모습일 뿐인 것이지요.
우리는 과연 이런 성모님을 사랑하고 있을까요? 우리는 성모님의 이 깊은 영성을 올바로 이해하고 있는 걸까요? 아니면 반대로 여전히 세상의 어느 부분을 사랑하고 있는 것일까요? 우리는 높아지고 더 멋있어지고 더 부유해지고 더 유명해지기를 바라고 있는 건 아닐까요?
세상과 하느님을 동시에 사랑하는 사람은 없습니다. 한 쪽을 사랑하면 다른 한 쪽을 무시하게 마련입니다. 우리는 신앙인이고 나아가서 부름받은 이들입니다. 하느님은 당신의 일을 하시기 위해서 특별히 우리를 부르신 것이지요. 우리는 다만 ‘예’ 하고 응답하기만 하면 됩니다. 모쪼록 우리 안의 세상을 향한 움직임을 걷어내고 하느님을 향해서 걸어나갈 수 있었으면 합니다.”
볼리비아 전국 각지에서 분원장 수녀님들이 모인 자리였습니다. 물론 위의 내용과 더불어서 수녀님들에게 부탁하고 싶은 말을 잔뜩 했습니다. 미사가 끝나고 가진 간단한 다과회 자리에서 또 기회가 닿는 대로 가르쳤습니다. 우리가 지녀야 할 사명에 대해서 세상을 향해서 우리가 마땅히 이루어 내어야 할 일에 대해서 열심히 가르쳤습니다. 모쪼록 거룩한 수녀님들이 되길 바랄 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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