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혜에 도달해가면서 전에는 보이지 않던 것들이 많이 보이게 됩니다. 전에는 그저 모든 것을 외면적으로 파악했지만 이제는 그 내면을 볼 수 있게 됩니다. 한 사람의 근본 의도가 무엇인지 미리 알고 대처할 수 있게 되지요. 그가 무엇을 선호하는지 그가 하는 말이 진실된지 아닌지 상당 부분을 파악할 수 있게 됩니다.
그와 동시에 인내와 겸손이 늘어가게 됩니다. 참아 견디지 않고 매 순간을 다투고 싸운다면 결코 온전히 지낼 수가 없습니다. 그의 의도를 알면서도 그를 견디고 도리어 그에게 축복을 건네주게 됩니다. 그러면서 매 순간 인내가 늘고 하느님 앞에 진정한 겸손이 조금씩 늘게 되지요.
외적으로는 ‘바보’로 비춰집니다. 이 사람이 한편으로는 똑똑해 보이는데 다른 한 편으로는 늘 당하고만 사는 것처럼 보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마냥 당하는 것도 아닙니다. 분명히 자신의 의견을 말할 때에는 말을 해야 합니다. 지혜로워진다는 것이 분별없이 모든 것을 수용하는 것은 아닙니다. 정말 신앙에 중대하게 위배되는 것이 있고 거기에 내가 해야 할 역할이 있다면 분명히 의사를 밝히기도 해야 하는 것이지요.
그러나 사람들의 기준은 참 얕은 것입니다. 그들은 자신들의 기호에 따라서 모든 것을 분별하고 그 모든 잡음이 필요한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여기저기 흥분하면서 몰려다니곤 하지요. 그러나 그들 중 하나를 잡아서 정말 본인의 생각과 의도가 무엇인지를 물어보면 할 말이 없게 됩니다. 그들은 다른 이들이 반복적으로 말하는 것을 외쳐댈 뿐입니다.
하느님을 아는 사람, 하느님의 참된 지혜를 찾는 사람이 되시길 바랍니다. 10년이라는 시간에 강산이 겨우 변하는 것과 같은 진득한 사람이 되시길 바랍니다. 그리고 반드시 해야 할 일 앞에서는 폭포수처럼 적극적인 사람이 되시길 바랍니다. 그러나 그 분별에 이르기까지 우리가 겪어야 할 수많은 시행착오를 인내와 겸손으로 이겨내시기 바랍니다.
그와 동시에 인내와 겸손이 늘어가게 됩니다. 참아 견디지 않고 매 순간을 다투고 싸운다면 결코 온전히 지낼 수가 없습니다. 그의 의도를 알면서도 그를 견디고 도리어 그에게 축복을 건네주게 됩니다. 그러면서 매 순간 인내가 늘고 하느님 앞에 진정한 겸손이 조금씩 늘게 되지요.
외적으로는 ‘바보’로 비춰집니다. 이 사람이 한편으로는 똑똑해 보이는데 다른 한 편으로는 늘 당하고만 사는 것처럼 보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마냥 당하는 것도 아닙니다. 분명히 자신의 의견을 말할 때에는 말을 해야 합니다. 지혜로워진다는 것이 분별없이 모든 것을 수용하는 것은 아닙니다. 정말 신앙에 중대하게 위배되는 것이 있고 거기에 내가 해야 할 역할이 있다면 분명히 의사를 밝히기도 해야 하는 것이지요.
그러나 사람들의 기준은 참 얕은 것입니다. 그들은 자신들의 기호에 따라서 모든 것을 분별하고 그 모든 잡음이 필요한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여기저기 흥분하면서 몰려다니곤 하지요. 그러나 그들 중 하나를 잡아서 정말 본인의 생각과 의도가 무엇인지를 물어보면 할 말이 없게 됩니다. 그들은 다른 이들이 반복적으로 말하는 것을 외쳐댈 뿐입니다.
하느님을 아는 사람, 하느님의 참된 지혜를 찾는 사람이 되시길 바랍니다. 10년이라는 시간에 강산이 겨우 변하는 것과 같은 진득한 사람이 되시길 바랍니다. 그리고 반드시 해야 할 일 앞에서는 폭포수처럼 적극적인 사람이 되시길 바랍니다. 그러나 그 분별에 이르기까지 우리가 겪어야 할 수많은 시행착오를 인내와 겸손으로 이겨내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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