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음 선포자는 스스로에게 물어 보아야 합니다. 정말 ‘복음’을 선포하려는 것인지, 즉 하느님의 말씀을 전해서 그분이 드높아지게 하려는 것인지 아니면 ‘자신’을 선포하려는 것인지를 물어야 합니다.
이 유혹은 참으로 교묘하게 우리에게 다가오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처음에는 순수한 마음으로 시작을 했다가도 어느 순간에서부터인가 전혀 다른 마음을 지닐 수 있습니다.
하지만 그 맛이 달라지게 됩니다. 복음 선포자가 하느님을 전할 때에는 적어도 복음 선포의 순간에는 편안함을 느끼지만, 이 중심이 자기 자신에게로 옮겨가기 시작하면서부터는 조금씩 불편해지는 것을 느낄 수 있습니다.
마치 모래밭에서 마음껏 뛰어 노는 아이와, 좋은 옷을 입고 와서 옷이 더럽혀질까 걱정하는 아이와 비슷합니다. 복음 선포자는 두려움이 없어야 합니다. 하느님이 사람들에게 해 주고 싶은 말을 전해야 합니다. 그리고 나머지는 하느님의 손에 맡기는 거지요.
하지만 자신이 중심이 되어버린 복음 선포자에게는 두려움이 시작되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점점 쌓여가는 무언가를 잃어버릴 두려움이 생겨나는 것이지요.
언제나 스스로를 잘 살펴야 합니다. 그리고 거듭 거듭 다시 하느님을 중심에 둘 수 있도록 노력해야 합니다. 우리는 결국 이 땅에서 하나도 남겨두지 않은 채로 떠나야 할 피조물에 불과하기 때문입니다.
이 유혹은 참으로 교묘하게 우리에게 다가오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처음에는 순수한 마음으로 시작을 했다가도 어느 순간에서부터인가 전혀 다른 마음을 지닐 수 있습니다.
하지만 그 맛이 달라지게 됩니다. 복음 선포자가 하느님을 전할 때에는 적어도 복음 선포의 순간에는 편안함을 느끼지만, 이 중심이 자기 자신에게로 옮겨가기 시작하면서부터는 조금씩 불편해지는 것을 느낄 수 있습니다.
마치 모래밭에서 마음껏 뛰어 노는 아이와, 좋은 옷을 입고 와서 옷이 더럽혀질까 걱정하는 아이와 비슷합니다. 복음 선포자는 두려움이 없어야 합니다. 하느님이 사람들에게 해 주고 싶은 말을 전해야 합니다. 그리고 나머지는 하느님의 손에 맡기는 거지요.
하지만 자신이 중심이 되어버린 복음 선포자에게는 두려움이 시작되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점점 쌓여가는 무언가를 잃어버릴 두려움이 생겨나는 것이지요.
언제나 스스로를 잘 살펴야 합니다. 그리고 거듭 거듭 다시 하느님을 중심에 둘 수 있도록 노력해야 합니다. 우리는 결국 이 땅에서 하나도 남겨두지 않은 채로 떠나야 할 피조물에 불과하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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