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는 오후 3시부터 시작해서 줄줄이 땅콩으로 연달아 일이 있었습니다. 아저씨를 데리고 병원을 갔다오고, 새로 지은 집 축복식을 갔다오고, 성인 견진반 세례 대상자 교육을 하고 끝으로 교리교사 교육 겸 꾸르실리스따들과 함께 하는 미사가 있었지요.
피곤하긴 했지만 보람찬 하루였습니다. 만일 제가 사람들에게 이러한 일들 가운데에서 무엇이 더 가치롭게 보이는가를 꼽아 보라고 한다면 당연히 아저씨를 데리고 병원을 갔다온 일을 선택할 것입니다. 왜냐하면 그 일이 외적으로는 더 ‘봉사적’이고 직접적으로 와 닿기 때문이지요. 하지만 저는 전혀 다르게 해석합니다. 보다 중요했던 일은 나머지 일들, 즉 축복식과 세례 대상자 교육과 나아가서 미사라고 말이지요.
사람들은 외적으로 드러나는 것에 쉽게 집중합니다. 어떤 행사를 해도 ‘큰 행사’가 중요하고 어떤 일을 해도 ‘드러나는’ 일이 중요하지요. 하지만 거기에는 숨어 있는 이면이 있는 것입니다. 사실 병원에 데리고 가야 했던 그 아저씨는 제가 굳이 병원에 데리고 가지 않았어도 될 사람이었습니다. 그 아저씨의 병은 그리 위중한 것도 아니었고 사실 거의 엄살에 가까운 정도였지요. 이 아저씨는 주일날 보좌 신부님에게 찾아와서 치료를 위해서 엄청난 금액을 요구한 사람이었습니다. 그래서 제가 그 일을 대신 맡았고 어제 함께 동행해서 소위 일을 ‘처리’한 셈이지요. 하지만 이 일이 대외적으로 알려진다면 마치 제가 엄청난 희생과 사랑의 일을 한 것으로 드러나게 될 것입니다.
보다 중요한 일은 사람들을 가르치는 일이었습니다. 사람들의 내면을 변화시키는 일이었지요. 그래서 저는 나머지 일들에 더 큰 비중을 두는 것입니다. 축복식은 ‘선교’를 위한 것이었습니다. 그들은 주일 미사에 거의 나오지 않는 사람들입니다. 하지만 뭔가 세상적으로 축하할 일들에는 주저하지 않고 찾아오지요. 그래서 저는 그 기회를 빌어 그들에게 하늘 나라의 씨앗을 심으러 갔던 것입니다. 물론 잘 될 리가 없겠지요. 시궁창에서 놀다가 어쩌다 한 번 향기를 맡는다고 그 향기를 추적해 따라오는 사람은 좀처럼 없기 때문입니다.
세례 교육 역시도 마찬가지입니다. 견진성사를 준비하는 어른들 가운데에서 아직 세례를 받지 않은 이들을 대상으로 간단한 교육을 시키고 세례를 주기 위해서 지난 수요일부터 해 오고 있는 교육이었지요. 가르치는 것은 별 거 없습니다. 성부, 성자, 성령, 그리고 성사이지요. 적어도 견진을 받고자 하는 이들은 ‘하느님’을 인정하고 받아 들이려는 이들입니다. (물론 그렇지 않은 이들도 많습니다.) 그래서 그들에게 하느님의 존재를 더욱 확신 시켜주고 그분이 바라시는 것을 알려줄 필요가 있었지요. 정말 최선을 다해서 가르쳤습니다.
마지막으로 미사는 교리교사들과 꾸르실리스따들이 모인 자리였습니다. 저희 본당의 교리교사들이야 매주 금요일 이런 시간을 갖는 것이지만 이 날은 특별히 미사와 곁들여서 가르침을 접하는 시간이었고 꾸르실리스따들은 산타 크루즈 전체에서 모인 10명의 부녀자들이었습니다. 이들 중에는 아주 잘 사는 집도 있고 나름 교구 내의 힘 꽤나 쓰는 봉사자들인 셈이지요. 그래서 교육이 더 필요한 시점이었습니다. 하지만 그들 가운데에서 외적 행태로 보여지는 교만은 쉽지 않은 장벽이었습니다. 그러나 단 한 명이라도 듣는 사람이 있다면 알아 들었으리라 생각합니다.
이 모든 일을 마치고 저는 집으로 돌아와 늦은 저녁을 먹었습니다. 하지만 저녁만큼은 아주 맛난 것을 먹었지요. 근처 사는 자매에게 부탁을 해서 ‘돼지 껍데기’ 요리를 사오라고 청했습니다. 그리고 아주 맛나게 먹었지요. ㅎㅎㅎ
아니, 지금 제가 먹은 요리 이야기를 하는 게 아니라, 제가 말하고자 하는 핵심은 모든 일의 외적인 가치보다 그 안에 숨겨진 내면의 가치를 볼 줄 알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수천명이 모이는 대외적인 행사보다는 차라리 우리가 직접적으로 다가가서 손이라도 잡아줄 수 있는 이웃을 향한 사랑의 행위가 더욱 소중한 법입니다. 그리고 그 각각의 행위 안에서도 우리의 마음을 온전히 담을 필요가 있습니다.
피곤하긴 했지만 보람찬 하루였습니다. 만일 제가 사람들에게 이러한 일들 가운데에서 무엇이 더 가치롭게 보이는가를 꼽아 보라고 한다면 당연히 아저씨를 데리고 병원을 갔다온 일을 선택할 것입니다. 왜냐하면 그 일이 외적으로는 더 ‘봉사적’이고 직접적으로 와 닿기 때문이지요. 하지만 저는 전혀 다르게 해석합니다. 보다 중요했던 일은 나머지 일들, 즉 축복식과 세례 대상자 교육과 나아가서 미사라고 말이지요.
사람들은 외적으로 드러나는 것에 쉽게 집중합니다. 어떤 행사를 해도 ‘큰 행사’가 중요하고 어떤 일을 해도 ‘드러나는’ 일이 중요하지요. 하지만 거기에는 숨어 있는 이면이 있는 것입니다. 사실 병원에 데리고 가야 했던 그 아저씨는 제가 굳이 병원에 데리고 가지 않았어도 될 사람이었습니다. 그 아저씨의 병은 그리 위중한 것도 아니었고 사실 거의 엄살에 가까운 정도였지요. 이 아저씨는 주일날 보좌 신부님에게 찾아와서 치료를 위해서 엄청난 금액을 요구한 사람이었습니다. 그래서 제가 그 일을 대신 맡았고 어제 함께 동행해서 소위 일을 ‘처리’한 셈이지요. 하지만 이 일이 대외적으로 알려진다면 마치 제가 엄청난 희생과 사랑의 일을 한 것으로 드러나게 될 것입니다.
보다 중요한 일은 사람들을 가르치는 일이었습니다. 사람들의 내면을 변화시키는 일이었지요. 그래서 저는 나머지 일들에 더 큰 비중을 두는 것입니다. 축복식은 ‘선교’를 위한 것이었습니다. 그들은 주일 미사에 거의 나오지 않는 사람들입니다. 하지만 뭔가 세상적으로 축하할 일들에는 주저하지 않고 찾아오지요. 그래서 저는 그 기회를 빌어 그들에게 하늘 나라의 씨앗을 심으러 갔던 것입니다. 물론 잘 될 리가 없겠지요. 시궁창에서 놀다가 어쩌다 한 번 향기를 맡는다고 그 향기를 추적해 따라오는 사람은 좀처럼 없기 때문입니다.
세례 교육 역시도 마찬가지입니다. 견진성사를 준비하는 어른들 가운데에서 아직 세례를 받지 않은 이들을 대상으로 간단한 교육을 시키고 세례를 주기 위해서 지난 수요일부터 해 오고 있는 교육이었지요. 가르치는 것은 별 거 없습니다. 성부, 성자, 성령, 그리고 성사이지요. 적어도 견진을 받고자 하는 이들은 ‘하느님’을 인정하고 받아 들이려는 이들입니다. (물론 그렇지 않은 이들도 많습니다.) 그래서 그들에게 하느님의 존재를 더욱 확신 시켜주고 그분이 바라시는 것을 알려줄 필요가 있었지요. 정말 최선을 다해서 가르쳤습니다.
마지막으로 미사는 교리교사들과 꾸르실리스따들이 모인 자리였습니다. 저희 본당의 교리교사들이야 매주 금요일 이런 시간을 갖는 것이지만 이 날은 특별히 미사와 곁들여서 가르침을 접하는 시간이었고 꾸르실리스따들은 산타 크루즈 전체에서 모인 10명의 부녀자들이었습니다. 이들 중에는 아주 잘 사는 집도 있고 나름 교구 내의 힘 꽤나 쓰는 봉사자들인 셈이지요. 그래서 교육이 더 필요한 시점이었습니다. 하지만 그들 가운데에서 외적 행태로 보여지는 교만은 쉽지 않은 장벽이었습니다. 그러나 단 한 명이라도 듣는 사람이 있다면 알아 들었으리라 생각합니다.
이 모든 일을 마치고 저는 집으로 돌아와 늦은 저녁을 먹었습니다. 하지만 저녁만큼은 아주 맛난 것을 먹었지요. 근처 사는 자매에게 부탁을 해서 ‘돼지 껍데기’ 요리를 사오라고 청했습니다. 그리고 아주 맛나게 먹었지요. ㅎㅎㅎ
아니, 지금 제가 먹은 요리 이야기를 하는 게 아니라, 제가 말하고자 하는 핵심은 모든 일의 외적인 가치보다 그 안에 숨겨진 내면의 가치를 볼 줄 알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수천명이 모이는 대외적인 행사보다는 차라리 우리가 직접적으로 다가가서 손이라도 잡아줄 수 있는 이웃을 향한 사랑의 행위가 더욱 소중한 법입니다. 그리고 그 각각의 행위 안에서도 우리의 마음을 온전히 담을 필요가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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