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음의 사람은 어떤 일이든지 할 것입니다. 내면적으로 복음화를 이룬 사람은 그 사람을 어느 자리에 두든지 거기에서 마찬가지의 방향으로 복음화를 이루어 낼 것이라는 말이지요. 정반대의 비슷한 표현으로 이런 표현이 있습니다. 집에서 새는 바가지가 나가서도 샌다. 마찬가지로 내면적으로 복음화를 이룬 사람은 어디에 가서든지 같은 일을 하게 됩니다.
헌데 이 ‘복음화’가 ‘운동’이 되는 순간, 많은 경우에 그 본래적인 의미를 상실하게 됩니다. 복음화는 진정한 의미의 변화이고 ‘운동’은 내부는 변화되지 않은 채로 하는 ‘행사’이기 때문입니다. 교황님은 진정한 복음화의 기쁨을 말씀하고 계시는데 적지 않은 이들은 그걸 ‘운동’으로 변질시켜 버리고 죽은 가르침으로 만들어 버리고 있습니다.
스승이 달을 가리키면 함께 달을 보자는 말입니다. 하지만 손가락만 쳐다보고 있으니 곤란합니다. 모든 사항이 일종의 ‘행동규약’으로 변해버리고 그렇게 ‘운동’으로 변해 버리는 순간 그 본질적인 가르침은 힘을 잃어버리게 됩니다.
교황님이 원하시는 것은 복음을 살자는 것이지 문제A는 B로 해결하고 문제C는 D로 해결하자는 구체적인 지침이 아닙니다. 하지만 앞으로도 적지 않은 곳에서는 수많은 ‘학술회’가 열리고 ‘강연회’가 열리면서 복음화를 ‘운동’으로 만들어 버리고 말 것입니다. 학술회나 강연회가 나쁘다는 것은 아니지만 문제는 이미 거기에 익숙해져버린 우리들입니다. 우리의 교회는 이미 굉장히 학술적이 되어 버렸기 때문이지요. 우리는 행동하기에 굼뜨지만 사고하는 데에는 무척이나 빠릅니다. 그리고 사고를 통해서 이미 다 이루었다고 생각하지요. 실제로는 한 걸음도 나아가지 못했는데 말입니다.
복음화의 근본은 살아있는 생생한 열정에 있습니다. 우리의 뜨거운 마음과 그 실천이 진정한 복음화를 이루어낸다는 말이지요. 앞으로 한동안 사람들은 좋은 가르침에 환호할 것입니다. 하지만 단순히 그런 환호에 그치지 않고 그 가르침을 실제로 살아내는 이들이 많이 등장했으면 하는 바램입니다.
헌데 이 ‘복음화’가 ‘운동’이 되는 순간, 많은 경우에 그 본래적인 의미를 상실하게 됩니다. 복음화는 진정한 의미의 변화이고 ‘운동’은 내부는 변화되지 않은 채로 하는 ‘행사’이기 때문입니다. 교황님은 진정한 복음화의 기쁨을 말씀하고 계시는데 적지 않은 이들은 그걸 ‘운동’으로 변질시켜 버리고 죽은 가르침으로 만들어 버리고 있습니다.
스승이 달을 가리키면 함께 달을 보자는 말입니다. 하지만 손가락만 쳐다보고 있으니 곤란합니다. 모든 사항이 일종의 ‘행동규약’으로 변해버리고 그렇게 ‘운동’으로 변해 버리는 순간 그 본질적인 가르침은 힘을 잃어버리게 됩니다.
교황님이 원하시는 것은 복음을 살자는 것이지 문제A는 B로 해결하고 문제C는 D로 해결하자는 구체적인 지침이 아닙니다. 하지만 앞으로도 적지 않은 곳에서는 수많은 ‘학술회’가 열리고 ‘강연회’가 열리면서 복음화를 ‘운동’으로 만들어 버리고 말 것입니다. 학술회나 강연회가 나쁘다는 것은 아니지만 문제는 이미 거기에 익숙해져버린 우리들입니다. 우리의 교회는 이미 굉장히 학술적이 되어 버렸기 때문이지요. 우리는 행동하기에 굼뜨지만 사고하는 데에는 무척이나 빠릅니다. 그리고 사고를 통해서 이미 다 이루었다고 생각하지요. 실제로는 한 걸음도 나아가지 못했는데 말입니다.
복음화의 근본은 살아있는 생생한 열정에 있습니다. 우리의 뜨거운 마음과 그 실천이 진정한 복음화를 이루어낸다는 말이지요. 앞으로 한동안 사람들은 좋은 가르침에 환호할 것입니다. 하지만 단순히 그런 환호에 그치지 않고 그 가르침을 실제로 살아내는 이들이 많이 등장했으면 하는 바램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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