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번 생각해 봅시다. 남을 도와 준다면서 자신이 점점 빠져들어간다면 그것이 과연 도와주는 것일까요? 결국 둘 다 진창에 빠져 버리고 말 것입니다.
남을 도와주기 위해서는 먼저 내가 어디에 있는지를 알아야 하고, 내가 도와줄 수 있는가 아닌가, 그럴 힘이 있는가 아닌가도 살펴야 하며, 그리고 상대가 내가 도와줄만한 대상인가도 분별할 수 있어야 합니다. 어린 아이가 늪에 빠져들어가는 소를 혼자 끌어올리겠다고 고삐에 매인 밧줄을 자기 몸에 묶기 시작하다가는 자신도 그 늪에 빠져들어가 결국 둘 다 죽고 맙니다.
분별력이 없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저 누구든 여러 사람을 만나 사귀면 다 좋다고 생각하는 이들이지요. 그래서 이들은 이 사람이든 저 사람이든 무작위로 만나고 다니기 시작합니다. 그리고 그들이 바라는 좋은 사람이 되어 주려고 하지요. 하지만 그 안에는 ‘독소’가 있는데 그걸 알아차리지 못하는 셈입니다. 그 독소가 자신을 찔러 점점 오염시키고 있다는 걸 모르는 채로 무턱대고 ‘친교’라는 핑계를 바탕으로 집어 삼키고 있는 셈이지요.
차라리 우리가 특정한 의도 없이 모든 사람들을 만나고 사랑한다면 오히려 안전할 것입니다. 모든 이를 동등한 위치에서 바라보고 사랑할 것이기 때문이지요. 하지만 우리가알게 모르게 마음이 끌리는 이들이 있습니다. 헌데 그러한 이들 가운데에는 의도를 품고 다가서는 이들이 있게 마련입니다.
아마 직접 체험하기 전에는 제가 무슨 말을 하는지조차 모르는 이들이 수두룩하리라 생각합니다. 어떤 체험은 실제로 겪어 보아야만 알 수 있는 것들이기 때문입니다. 아이에게 불의 뜨거움에 대해서 여러가지 비유를 들어 가르칠 수 있지만 확실한 방법은 가서 데어 보는 것입니다. 그러고 나면 함부로 다가가지 않지요.
남을 도와주기 위해서는 먼저 내가 어디에 있는지를 알아야 하고, 내가 도와줄 수 있는가 아닌가, 그럴 힘이 있는가 아닌가도 살펴야 하며, 그리고 상대가 내가 도와줄만한 대상인가도 분별할 수 있어야 합니다. 어린 아이가 늪에 빠져들어가는 소를 혼자 끌어올리겠다고 고삐에 매인 밧줄을 자기 몸에 묶기 시작하다가는 자신도 그 늪에 빠져들어가 결국 둘 다 죽고 맙니다.
분별력이 없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저 누구든 여러 사람을 만나 사귀면 다 좋다고 생각하는 이들이지요. 그래서 이들은 이 사람이든 저 사람이든 무작위로 만나고 다니기 시작합니다. 그리고 그들이 바라는 좋은 사람이 되어 주려고 하지요. 하지만 그 안에는 ‘독소’가 있는데 그걸 알아차리지 못하는 셈입니다. 그 독소가 자신을 찔러 점점 오염시키고 있다는 걸 모르는 채로 무턱대고 ‘친교’라는 핑계를 바탕으로 집어 삼키고 있는 셈이지요.
차라리 우리가 특정한 의도 없이 모든 사람들을 만나고 사랑한다면 오히려 안전할 것입니다. 모든 이를 동등한 위치에서 바라보고 사랑할 것이기 때문이지요. 하지만 우리가알게 모르게 마음이 끌리는 이들이 있습니다. 헌데 그러한 이들 가운데에는 의도를 품고 다가서는 이들이 있게 마련입니다.
아마 직접 체험하기 전에는 제가 무슨 말을 하는지조차 모르는 이들이 수두룩하리라 생각합니다. 어떤 체험은 실제로 겪어 보아야만 알 수 있는 것들이기 때문입니다. 아이에게 불의 뜨거움에 대해서 여러가지 비유를 들어 가르칠 수 있지만 확실한 방법은 가서 데어 보는 것입니다. 그러고 나면 함부로 다가가지 않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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