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들이 사제를 찾는 이유는 ‘거룩한 권위와 지혜’ 때문입니다.
사람들이 수도자를 찾는 이유는 ‘겸손한 봉헌의 삶’ 때문입니다.
사람들이 평신도를 찾는 이유는 ‘세상 안에서의 모범’ 때문입니다.
헌데 사제가 평신도인 양 세속적이고,
수도자가 사제인 양 권위적이고,
평신도가 수도자인 양 도피적이 되어버리면,
그 본래의 성질이 사라지고 맙니다.
그런 사제, 수도자, 평신도는 아무도 찾지 않는 자들이 됩니다. 자신의 역할을 해 내지 못하는 소금은 버려져 사람들에게 짓밟힐 뿐입니다. 초는 밝히는 데 쓰고, 가스불은 요리하는 데 쓰고, 연탄불은 방을 덥히는 데 쓰는 겁니다. 초로 요리할 수 없고, 가스불로 방을 덥힐 수 없으며, 연탄불로 밝힐 수 없습니다.
모두 제자리가 있는 법입니다.
신자들이 영적 양식에 허덕이는데 그걸 마련하지 않고 다른 일에 매진하는 사제,
사람들이 기도를 청하고, 겸손한 모범을 청하는데 사목하려고 드는 수도자,
일상 안에서의 만남 속에서 그리스도의 향기를 찾고자 하지만 성당으로 도피하는 평신도들… 이들은 뭔가 어긋난 이들입니다.
사람들이 수도자를 찾는 이유는 ‘겸손한 봉헌의 삶’ 때문입니다.
사람들이 평신도를 찾는 이유는 ‘세상 안에서의 모범’ 때문입니다.
헌데 사제가 평신도인 양 세속적이고,
수도자가 사제인 양 권위적이고,
평신도가 수도자인 양 도피적이 되어버리면,
그 본래의 성질이 사라지고 맙니다.
그런 사제, 수도자, 평신도는 아무도 찾지 않는 자들이 됩니다. 자신의 역할을 해 내지 못하는 소금은 버려져 사람들에게 짓밟힐 뿐입니다. 초는 밝히는 데 쓰고, 가스불은 요리하는 데 쓰고, 연탄불은 방을 덥히는 데 쓰는 겁니다. 초로 요리할 수 없고, 가스불로 방을 덥힐 수 없으며, 연탄불로 밝힐 수 없습니다.
모두 제자리가 있는 법입니다.
신자들이 영적 양식에 허덕이는데 그걸 마련하지 않고 다른 일에 매진하는 사제,
사람들이 기도를 청하고, 겸손한 모범을 청하는데 사목하려고 드는 수도자,
일상 안에서의 만남 속에서 그리스도의 향기를 찾고자 하지만 성당으로 도피하는 평신도들… 이들은 뭔가 어긋난 이들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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