때로 하느님을 마음에 품지 않은 인간들의 생각은 얼마나 꼬여 있고 어리석은지 모른다. 그들은 스스로 영원을 살 듯이 생각하고 모든 것을 다 안다고 자만하지만 실제로는 아무것도 모른 채 순간을 살다가 떠나게 될 것이다. 그리고 그 일은 실제로 일어나고 있다. 우리는 우리에게 허락된 생애 동안 일어나는 일들에 웃고 울고 하면서 이 드라마의 주인공이 된 듯 착각하지만 실제로 우리는 더욱 큰 그림의 일부분으로 그 그림에 동참할 수도 있고 반대로 쓰여지지 않고 그저 버려지는 재료가 될 수도 있다. 오직 사랑하는 사람만이 그 영원의 가치를 가지고 하느님의 그림에 참여하게 될 것이다. 안목을 넓혀야 한다. 영원을 두고 우리 자신을 바라보기 시작한다면 많은 오류를 사전에 예방할 수 있고 더욱 가치로운 일에 매진할 수 있게 될 것이다. 하지만 사람들은 저마다 삿대질을 해 가며 서로를 비난하는 데에 적지 않은 시간을 보낸다. 그 모든 시간들은 우리에게 허락된 하느님의 소중한 기회라는 것을 잊고서 말이다.
통상적으로 가톨릭의 성직자(거룩한 직분을 받은 자)를 신부님이라고 부르고 개신교의 목회자(회중을 사목하는 자)를 목사님이라고 부릅니다. 당연히 이를 올바로 구별하기 위해서는 가톨릭(또는 천주교)과 개신교의 차이를 알아야 하겠지요? 기독교라는 말은 ‘그리스도교’의 한자 음역을 한 단어를 의미합니다. 그래서 기독교는 통상적으로 가톨릭과 개신교를 모두 포함하는 말입니다. 정확하게 표현하기 위해서는 천주교(가톨릭: 보편적)과 개신교(프로테스탄트: 저항)로 표기하는 것이 맞습니다. 먼저는 예수님입니다. 2000여년 전 인류사에서 한 인물이 등장을 했고 엄청난 이슈를 남기게 되었지요. 그리고 그를 추종하는 ‘그리스도인들’이 생겨나게 됩니다. 소위 ‘믿는 이들의 공동체’인 교회가 생겨나게 된 것이지요. 그리고 이 교회는 역사를 통해서 그 덩치를 키우게 됩니다. 그리고 덩치가 커지니 만큼 순수했던 처음의 열정이 사라져가고 온갖 사람들이 그 안에 들어서게 되지요. 그리고 엉뚱한 움직임들이 많이 등장하게 됩니다. 즉 교회의 본질에서 벗어나는 많은 모습들이 보이게 되었지요. 돈에 대한 탐욕, 권력에 대한 집착과 같은 움직임들입니다. 그리고 자연스레 그에 반발하는 움직임이 등장하게 되지요. 그것이 바로 개신교의 시초인 셈입니다. 루터라는 인물이 95개조의 반박문을 쓰고 했다는 역사적인 이야기를 들어본 적이 있을 것입니다. 그로부터 개신교 형제들이 자기들의 신조를 들고 갈려 나오기 시작 했습니다. 그들은 오직 믿음, 오직 성경, 오직 은총과 같은 구호를 외치면서 가톨릭에서 갈려 나와 자신들이 진정한 초대교회의 정통성을 이어 받았다고 주장하기 시작했지요. 그리고 가톨릭은 여전히 가톨릭대로 자신들이 정통성을 이어가고 있다고 하고 있는 상황이 펼쳐지게 됩니다. 우리의 몸이 때로는 아플 수 있습니다. 하지만 몸이 아프다고 해서 성한 팔을 따로 잘라내지는 않는 것처럼 공동체도 마찬가지여야 합니다. 공동체가 아프면 모두 힘을 모아서 그 아픈 부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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