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한국 교회에 살아서 한국 교회를 자연스럽고 당연하게 받아들입니다. 하지만 우리는 우리만의 특색 속에서 살아가고 있다는 걸 잊어서는 안됩니다. 그리고 세계 교회, 만민을 아우르는 교회에 더욱 다가갈 필요가 있지요.
우물 안의 개구리는 밖에 풀이 있는지 나무가 있는지 새가 있는지 전혀 모릅니다. 그저 우물 안의 공간과 높이 보이는 하늘만 바라보지요. 그래서 그 안에서 헐떡대고 살아갑니다. 그 작은 공간에서 좀 더 높이 올라가려 하고, 서로 다투곤 하는 셈이지요.
우물을 빠져나오는 길이 꼭 다른 나라로 가야만 이루어지는 것은 아닙니다. 그건 다른 우물로 들어가는 것에 불과합니다. 진정 우물에서 나오려면 우리의 마음을 드높여야 합니다. 왜냐면 참된 지혜는 하느님께서 주시는 것이니까요.
우리가 하느님에게 다가설 때에 비로소 큰 그림이 보이게 됩니다. 그리고 사실 그 길은 하느님이 모든 이에게 공정하게 베풀어 주셨지요. 우리는 모두 공평한 기회를 가지고 있습니다. 바로 하느님에게 나아갈 공평한 기회이지요. 사제라고 수도자라도 더 많이 가지고 있는 게 아닙니다.
우리가 우물을 벗어나게 되면 다른 이들을 진정한 의미로 도와줄 수 있게 됩니다. 그리고 우리는 축복의 근원이 되지요.
우물 안의 개구리는 밖에 풀이 있는지 나무가 있는지 새가 있는지 전혀 모릅니다. 그저 우물 안의 공간과 높이 보이는 하늘만 바라보지요. 그래서 그 안에서 헐떡대고 살아갑니다. 그 작은 공간에서 좀 더 높이 올라가려 하고, 서로 다투곤 하는 셈이지요.
우물을 빠져나오는 길이 꼭 다른 나라로 가야만 이루어지는 것은 아닙니다. 그건 다른 우물로 들어가는 것에 불과합니다. 진정 우물에서 나오려면 우리의 마음을 드높여야 합니다. 왜냐면 참된 지혜는 하느님께서 주시는 것이니까요.
우리가 하느님에게 다가설 때에 비로소 큰 그림이 보이게 됩니다. 그리고 사실 그 길은 하느님이 모든 이에게 공정하게 베풀어 주셨지요. 우리는 모두 공평한 기회를 가지고 있습니다. 바로 하느님에게 나아갈 공평한 기회이지요. 사제라고 수도자라도 더 많이 가지고 있는 게 아닙니다.
우리가 우물을 벗어나게 되면 다른 이들을 진정한 의미로 도와줄 수 있게 됩니다. 그리고 우리는 축복의 근원이 되지요.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