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경을 통해서 알 수 있는 것은 하느님의 은총은 낮은 곳으로 흐른다는 것입니다. 하느님은 교만한 자들, 뻐기는 자들, 자신을 내세우는 자들을 거부하시고 내치십니다. 반면 낮은 자를 들어높여 주시는 분이시지요.
낮아짐은 신비입니다. 왜냐면 우리는 ‘높아지도록’ 설계되어 있기 때문이지요. 우리의 본능은 높아지게 되어 있습니다. 약육강식의 동물의 세계를 보면 알 수 있습니다. 우리는 반항의 족속입니다. 그래서 낮아짐은 ‘신비’입니다. 왜냐면 우리 본성 안에 포함되어 있지 않은 부분이기 때문입니다.
낮아지는 것은 참으로 쉽지 않습니다. 쉬우면 누구나 다 이루어 내었겠지요. 낮아지는 것이 어려운 만큼 하느님의 축복이 예비되어 있습니다. 우리가 낮아질수록 더 많은 은총이 흘러 들어오게 됩니다.
비가 오면 빗물은 낮은 곳으로 모입니다. 마찬가지로 하느님의 은총은 모든 세상 사람들에게 고루 내리지만 결국 낮은 곳으로 모이게 되는 것입니다. 어느 집에 들어가서든 ‘평화를 빈다’고 인사를 했을 때에 그들이 평화를 받을 만하지 않으면 그 평화가 돌아오는 이유도 마찬가지입니다. 마치 언덕에 물을 뿌렸는데 그 물이 다시 내가 서 있는 낮은 자리로 돌아오는 격이지요.
낮아지는 것의 이 많은 은총을 우리는 많은 경우 이해하지 못하고 높아지고자 애를 씁니다. 하지만 거듭 강조합니다. 낮은 곳에 하느님의 은총이 모두 모이게 됩니다.
낮아짐은 신비입니다. 왜냐면 우리는 ‘높아지도록’ 설계되어 있기 때문이지요. 우리의 본능은 높아지게 되어 있습니다. 약육강식의 동물의 세계를 보면 알 수 있습니다. 우리는 반항의 족속입니다. 그래서 낮아짐은 ‘신비’입니다. 왜냐면 우리 본성 안에 포함되어 있지 않은 부분이기 때문입니다.
낮아지는 것은 참으로 쉽지 않습니다. 쉬우면 누구나 다 이루어 내었겠지요. 낮아지는 것이 어려운 만큼 하느님의 축복이 예비되어 있습니다. 우리가 낮아질수록 더 많은 은총이 흘러 들어오게 됩니다.
비가 오면 빗물은 낮은 곳으로 모입니다. 마찬가지로 하느님의 은총은 모든 세상 사람들에게 고루 내리지만 결국 낮은 곳으로 모이게 되는 것입니다. 어느 집에 들어가서든 ‘평화를 빈다’고 인사를 했을 때에 그들이 평화를 받을 만하지 않으면 그 평화가 돌아오는 이유도 마찬가지입니다. 마치 언덕에 물을 뿌렸는데 그 물이 다시 내가 서 있는 낮은 자리로 돌아오는 격이지요.
낮아지는 것의 이 많은 은총을 우리는 많은 경우 이해하지 못하고 높아지고자 애를 씁니다. 하지만 거듭 강조합니다. 낮은 곳에 하느님의 은총이 모두 모이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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