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부가 되려는 이들은 부부의 의무와 책무를 생각하고 부부가 되려는 것이 아닙니다. 그 이전에 둘의 좋은 감정과 피어나는 사랑 때문에 부부가 되려고 하는 것이지요. 하지만 부부가 된 후에 닥치게 될 이런 저런한 크고 작은 일상적인 어려움을 모두 타진해 본다면 그 어떤 부부도 섣불리 혼인가약을 맺지는 못할 것입니다.
사제가 되려는 이들도 마찬가지입니다. 사제직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몰라서 사제가 되려는 것이지 사제의 고독과 인간적 고뇌, 그리고 사목적 일상 안에서 마주하는 수많은 어려움들을 고려해 본다면 함부로 사제직을 선택하려는 이들이 없을 것입니다.
모르기 때문에 시작하는 것이고 조금씩 알아나가는 것입니다. 알면 하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우리가 미숙해서 알지 못하는 것은 단순히 우리의 부족함이 아니라 한편으로는 축복이 되는 것입니다. 부부든 사제든 자신의 삶의 막바지에 이르러서 자신을 되돌아보면 비로소 그림의 윤곽이 잡히는 것입니다. 왜 처음은 그리 달콤했고 그 진행 과정은 그렇게도 무거웠으며 마침내는 웃을 수 있게 되는지를 뒤늦게 깨닫는 것이지요. 물론 이 시점에 이르기까지도 철들지 못하는 사람이 있기도 합니다.
모르기 때문에 하는 선택들이 거의 대부분입니다. 하지만 우리의 첫 이끌림이 우리의 무지 때문에 헛된 것은 아닙니다. 하느님은 비록 미약하지만 우리 의지의 작고 미약한 봉헌도 받아들여 주시는 분이십니다. 그리고 그것으로 아주 큰 일을 이루시는 분이시지요. 우리가 해야 할 것은 의탁하는 것입니다. 믿고 맡겨 드리는 것이지요.
사제가 되려는 이들도 마찬가지입니다. 사제직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몰라서 사제가 되려는 것이지 사제의 고독과 인간적 고뇌, 그리고 사목적 일상 안에서 마주하는 수많은 어려움들을 고려해 본다면 함부로 사제직을 선택하려는 이들이 없을 것입니다.
모르기 때문에 시작하는 것이고 조금씩 알아나가는 것입니다. 알면 하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우리가 미숙해서 알지 못하는 것은 단순히 우리의 부족함이 아니라 한편으로는 축복이 되는 것입니다. 부부든 사제든 자신의 삶의 막바지에 이르러서 자신을 되돌아보면 비로소 그림의 윤곽이 잡히는 것입니다. 왜 처음은 그리 달콤했고 그 진행 과정은 그렇게도 무거웠으며 마침내는 웃을 수 있게 되는지를 뒤늦게 깨닫는 것이지요. 물론 이 시점에 이르기까지도 철들지 못하는 사람이 있기도 합니다.
모르기 때문에 하는 선택들이 거의 대부분입니다. 하지만 우리의 첫 이끌림이 우리의 무지 때문에 헛된 것은 아닙니다. 하느님은 비록 미약하지만 우리 의지의 작고 미약한 봉헌도 받아들여 주시는 분이십니다. 그리고 그것으로 아주 큰 일을 이루시는 분이시지요. 우리가 해야 할 것은 의탁하는 것입니다. 믿고 맡겨 드리는 것이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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