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번째로는 어떤 아저씨가 질문한 내용입니다.
- 신부님, 아파서 침대에 누워 있는 사람은 왜 그런 거라요?
- 음, 고통은 세 가지 의미가 있어요. 하나는 나의 죄의 결과이고, 다른 하나는 자연스러운 악의 결과물이고, 마지막 하나는 ‘대속’이라는 개념이지요.
첫번째로 나의 죄의 결과는 내가 그릇되이 행한 걸로 얻게 되는 고통이예요. 담배를 핀다던가 술을 과하게 마신다던가 음식을 과하게 먹어 생기는 결과들이지요. 물론 윤리적으로도 마찬가지이구요. 바람을 피우면 언젠가는 그에 상응하는 고통이 뒤따르게 되요. 그건 우리가 당연히 얻게 되는 고통이지요.
둘째로는 자연 재해나 노화 처럼 우리 탓이 없지만 우리가 겪어야 하는 고통이 있어요. 그리고 우리는 이러한 고통을 통해서 ‘받아들이는’ 능력을 키워 나가지요. 마치 아이가 걸음마를 배워서 걷게 되듯이 우리도 고통을 통해서 ‘참는’ 능력을 기르게 되는 거예요. 우리의 인내가 커질수록 우리의 내적 활동 영역도 커지게 되지요. 따라서 이 고통은 우리 인생에 반드시 수반되는 고통 중의 하나예요.
세번째 고통은 좀 특이한 것인데요. 이는 대속 개념 이예요. 한 아들이 잘못을 해서 감옥에 가면 엄마가 수고를 들여서 면회를 갈 수 있어요. 엄마로서는 아무런 잘못이 없고 도리어 아들에게 나쁜 짓을 하지 말라고 충고했는데도 엄마는 아들의 악행으로 인해 고통을 ‘일부러’ 겪습니다. 이 고통은 ‘대속’하는 개념이지요. 엄마가 아들을 찾아 감으로써 아들에게 ‘위로’가 주어지니까요. 바로 우리 주님이 보여주신 수난의 의미가 이런 것이지요. 아무런 잘못이 없는 예수님이 죽어 우리가 죄에서 해방되는 셈이니까요.
자, 이제 침대에 누워 있는 아저씨의 문제로 돌아가 봅시다. 과연 그 아저씨의 고통은 무엇일까요? 그건 사실 아무도 몰라요. 그게 그 아저씨의 죄의 결과일지, 아니면 자연스레 주어진 고통의 일환일지, 아니면 그 아저씨가 누군가의 고통을 대신 지고 있는 것일지 말이지요. 다만 우리로서는 병자를 위로해야 해요. 그게 우리가 신앙인으로서 할 일이지요. 그 아저씨는 스스로 자신의 고통을 지고 갈 거예요. 그게 자신의 죄의 결과라면 마땅히 져야 할 것이고, 자연적인 과정이라면 수용해야 할 것이고, 그리고 혹시 모르지만 누군가를 대신해 고통을 일부러 감내하고 있는지도 모르지요. 그건 아무도 몰라요. 오직 하느님만이 아시지요.
이 정도면 이해가 되실런지요?
- 신부님, 아파서 침대에 누워 있는 사람은 왜 그런 거라요?
- 음, 고통은 세 가지 의미가 있어요. 하나는 나의 죄의 결과이고, 다른 하나는 자연스러운 악의 결과물이고, 마지막 하나는 ‘대속’이라는 개념이지요.
첫번째로 나의 죄의 결과는 내가 그릇되이 행한 걸로 얻게 되는 고통이예요. 담배를 핀다던가 술을 과하게 마신다던가 음식을 과하게 먹어 생기는 결과들이지요. 물론 윤리적으로도 마찬가지이구요. 바람을 피우면 언젠가는 그에 상응하는 고통이 뒤따르게 되요. 그건 우리가 당연히 얻게 되는 고통이지요.
둘째로는 자연 재해나 노화 처럼 우리 탓이 없지만 우리가 겪어야 하는 고통이 있어요. 그리고 우리는 이러한 고통을 통해서 ‘받아들이는’ 능력을 키워 나가지요. 마치 아이가 걸음마를 배워서 걷게 되듯이 우리도 고통을 통해서 ‘참는’ 능력을 기르게 되는 거예요. 우리의 인내가 커질수록 우리의 내적 활동 영역도 커지게 되지요. 따라서 이 고통은 우리 인생에 반드시 수반되는 고통 중의 하나예요.
세번째 고통은 좀 특이한 것인데요. 이는 대속 개념 이예요. 한 아들이 잘못을 해서 감옥에 가면 엄마가 수고를 들여서 면회를 갈 수 있어요. 엄마로서는 아무런 잘못이 없고 도리어 아들에게 나쁜 짓을 하지 말라고 충고했는데도 엄마는 아들의 악행으로 인해 고통을 ‘일부러’ 겪습니다. 이 고통은 ‘대속’하는 개념이지요. 엄마가 아들을 찾아 감으로써 아들에게 ‘위로’가 주어지니까요. 바로 우리 주님이 보여주신 수난의 의미가 이런 것이지요. 아무런 잘못이 없는 예수님이 죽어 우리가 죄에서 해방되는 셈이니까요.
자, 이제 침대에 누워 있는 아저씨의 문제로 돌아가 봅시다. 과연 그 아저씨의 고통은 무엇일까요? 그건 사실 아무도 몰라요. 그게 그 아저씨의 죄의 결과일지, 아니면 자연스레 주어진 고통의 일환일지, 아니면 그 아저씨가 누군가의 고통을 대신 지고 있는 것일지 말이지요. 다만 우리로서는 병자를 위로해야 해요. 그게 우리가 신앙인으로서 할 일이지요. 그 아저씨는 스스로 자신의 고통을 지고 갈 거예요. 그게 자신의 죄의 결과라면 마땅히 져야 할 것이고, 자연적인 과정이라면 수용해야 할 것이고, 그리고 혹시 모르지만 누군가를 대신해 고통을 일부러 감내하고 있는지도 모르지요. 그건 아무도 몰라요. 오직 하느님만이 아시지요.
이 정도면 이해가 되실런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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