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누군가에게 대해서 뭔가가 잘못되었다는 것을 느낄 때가 있습니다. 즉 내 안에 하나의 경보 장치가 있어서 상대의 행동을 분별하고 신호를 보내는 것이지요. 이를 잘 관찰해보면 과연 내 안에 무엇이 들어 있는지를 알 수 있습니다.
우리는 무엇에 마음을 쓰고 있을까요?
대부분의 사람들에게 이 핵심 기준은 주로는 ‘나의 편의’입니다. 나에게 껄끄러운가 아닌가가 중요시될 뿐, 그 밖의 일에는 무심하게 됩니다. 팔레스티나의 가자 지구에서 몇 명이 죽어 나가도 아무 상관 없다가 국내에서 사건이 터져 연일 나의 페이스북 친구들이 그 소식을 올리면 거기에는 신경을 곤두세우고 매진하지요. 세상이 멸망해도 무관심할 것 같던 사람이 갑자기 어느 순간부터 투사가 되는 것입니다. 왜냐면 그 소식들이 나의 생활 범위 안으로 침투해 들어오기 때문이지요.
언뜻 수많은 이들은 자신들이 진정으로 ‘참되고 선한 것’을 추구하고 있다고 생각하겠지만 실제로는 ‘자신에게 껄끄럽지 않은 것’을 추구하고 있는 것이 사실입니다. 내 직장이 안정되어 있고 가정에 별다른 문제가 없으면 조용히 살아갈 사람들입니다. 하지만 삶이라는 것이 그리 호락호락하지 않지요. 왜냐면 문제라는 것들은 서로 연결되어 있어서 결국에는 내 삶에도 영향을 미치니까요.
이제 관점을 바꾸어서 생각해 볼 필요가 있습니다. 과연 우리는 언제 남에게 ‘충고’를 해 주고 싶은 걸까요? 마찬가지입니다. 대부분의 경우는 우리가 불편해지기 시작하면 그 불편을 야기하는 사람을 찾아가서 충고를 해 주려고 합니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이런 대부분의 케이스는 결과가 그리 좋지 않게 마련입니다.
충고는 그 사람을 위해서 해 주어야 합니다. 나의 불편함이 아니라 그가 엇나가는 것이 명확할 때에 해 주어야 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를 위해서 우리는 평소에 진실하고 정의로운 삶에 관심을 가지고 있어야 합니다. 하느님이 누구신지 알고 그분을 향해 나아가는 길을 찾아야 하는 것입니다. 그때에야 주변 사물들이 어떤 위치에 놓여 있는지를 볼 수 있게 되고 그것을 올바르게 바로잡아 줄 수 있게 됩니다.
자신이 어디에 있는지도 모르는 채로 남을 가르치고자 나서는 이들이 있으니 소경이 소경을 이끌어 둘 다 구렁텅이에 빠져 버리게 됩니다. 남을 가르치기 전에 먼저 우리 자신을 바로 세워야 합니다. 그래야 진정한 충고를 해 줄 수 있습니다.
우리는 무엇에 마음을 쓰고 있을까요?
대부분의 사람들에게 이 핵심 기준은 주로는 ‘나의 편의’입니다. 나에게 껄끄러운가 아닌가가 중요시될 뿐, 그 밖의 일에는 무심하게 됩니다. 팔레스티나의 가자 지구에서 몇 명이 죽어 나가도 아무 상관 없다가 국내에서 사건이 터져 연일 나의 페이스북 친구들이 그 소식을 올리면 거기에는 신경을 곤두세우고 매진하지요. 세상이 멸망해도 무관심할 것 같던 사람이 갑자기 어느 순간부터 투사가 되는 것입니다. 왜냐면 그 소식들이 나의 생활 범위 안으로 침투해 들어오기 때문이지요.
언뜻 수많은 이들은 자신들이 진정으로 ‘참되고 선한 것’을 추구하고 있다고 생각하겠지만 실제로는 ‘자신에게 껄끄럽지 않은 것’을 추구하고 있는 것이 사실입니다. 내 직장이 안정되어 있고 가정에 별다른 문제가 없으면 조용히 살아갈 사람들입니다. 하지만 삶이라는 것이 그리 호락호락하지 않지요. 왜냐면 문제라는 것들은 서로 연결되어 있어서 결국에는 내 삶에도 영향을 미치니까요.
이제 관점을 바꾸어서 생각해 볼 필요가 있습니다. 과연 우리는 언제 남에게 ‘충고’를 해 주고 싶은 걸까요? 마찬가지입니다. 대부분의 경우는 우리가 불편해지기 시작하면 그 불편을 야기하는 사람을 찾아가서 충고를 해 주려고 합니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이런 대부분의 케이스는 결과가 그리 좋지 않게 마련입니다.
충고는 그 사람을 위해서 해 주어야 합니다. 나의 불편함이 아니라 그가 엇나가는 것이 명확할 때에 해 주어야 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를 위해서 우리는 평소에 진실하고 정의로운 삶에 관심을 가지고 있어야 합니다. 하느님이 누구신지 알고 그분을 향해 나아가는 길을 찾아야 하는 것입니다. 그때에야 주변 사물들이 어떤 위치에 놓여 있는지를 볼 수 있게 되고 그것을 올바르게 바로잡아 줄 수 있게 됩니다.
자신이 어디에 있는지도 모르는 채로 남을 가르치고자 나서는 이들이 있으니 소경이 소경을 이끌어 둘 다 구렁텅이에 빠져 버리게 됩니다. 남을 가르치기 전에 먼저 우리 자신을 바로 세워야 합니다. 그래야 진정한 충고를 해 줄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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