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시당하는 것은 나의 존재의 고귀함을 거부당하는 것입니다. 세상에는 교만한 이들이 있고 그들은 곧잘 다른 이들을 무시합니다. 낮춰 보는 것이지요. 원래의 자리에 있어야 할 그들을 그 자리보다 낮은 이들로 낮춰보는 것입니다. 그래서 무시당한 이들은 그 감정을 느끼게 되는 것이지요.
우리는 곧잘 이러한 감정을 느낍니다. 내가 올바른 나로 대접받지 못했다고 생각이 될 때면 언제나 이를 느끼지요. 무시당하는 것에 이어서 따라오는 감정은 ‘슬픔, 분노, 앙심’ 따위의 것들입니다. 따라서 무시당하는 것은 많은 기타 악감정을 동시에 불러일으키지요.
문제는, 과연 우리가 무시 당했는가 하는 것입니다. 다시 말씀 드리자면, ‘과연 그들의 그런 시선이 우리의 존재를 낮출 수 있는가?’ 하는 것이지요. 결론부터 말씀을 드리면 그렇지 않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남들이 낮춘다고 낮아지는 존재들이 아닙니다. 무엇보다 우리는 우리와 똑같은 인간존재인 타인의 시선에 목매달고 살아가는 이들이 되어서는 안됩니다.
하지만 사람들의 시선을 중요시 여기는 이들이 있습니다. 성경에서 바리사이들과 율법학자들, 대사제들이 그러하였지요. 그들은 ‘군중’을 무서워하였습니다. 그래서 그들 눈치가 보여 하고 싶은 일도 하지 못하곤 하였지요. 오늘날에도 이런 이들은 얼마든지 있습니다. ‘진실과 정의’보다 사람들의 눈을 두려워하는 이들은 얼마든지 있지요. 이들은 사람들의 의견에 민감하게 반응하고 심지어는 진실과 정의마저도 무시하면서 사람들의 비위를 맞추기 위해 노력합니다.
이런 이들은 곧잘 무시당했다고 느낄 것입니다. 아마 수시 때때로 느낄 것입니다. 식당에 가서 음식 하나를 시키고도 종업원의 합당한 대우를 받지 못했다고 곧잘 화를 낼 것입니다. 이들은 많은 경우에 화가 난 상태로 지낼 것이고 따라서 행복하지 못할 것입니다.
하느님의 자녀인 우리들은 함부로 무시당할 수 없습니다. 우리의 존재는 사람들의 시선에서 나오는 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하느님의 사랑을 받는 자녀들이고 하느님을 사랑하는 이들의 합당한 존중을 늘 받고 있는 이들입니다. 세상 사람들은 이런 우리들을 철저하게 무시하려고 들 것입니다. 하지만 용기를 내십시오. 주님께서 세상을 이기셨습니다.
우리는 곧잘 이러한 감정을 느낍니다. 내가 올바른 나로 대접받지 못했다고 생각이 될 때면 언제나 이를 느끼지요. 무시당하는 것에 이어서 따라오는 감정은 ‘슬픔, 분노, 앙심’ 따위의 것들입니다. 따라서 무시당하는 것은 많은 기타 악감정을 동시에 불러일으키지요.
문제는, 과연 우리가 무시 당했는가 하는 것입니다. 다시 말씀 드리자면, ‘과연 그들의 그런 시선이 우리의 존재를 낮출 수 있는가?’ 하는 것이지요. 결론부터 말씀을 드리면 그렇지 않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남들이 낮춘다고 낮아지는 존재들이 아닙니다. 무엇보다 우리는 우리와 똑같은 인간존재인 타인의 시선에 목매달고 살아가는 이들이 되어서는 안됩니다.
하지만 사람들의 시선을 중요시 여기는 이들이 있습니다. 성경에서 바리사이들과 율법학자들, 대사제들이 그러하였지요. 그들은 ‘군중’을 무서워하였습니다. 그래서 그들 눈치가 보여 하고 싶은 일도 하지 못하곤 하였지요. 오늘날에도 이런 이들은 얼마든지 있습니다. ‘진실과 정의’보다 사람들의 눈을 두려워하는 이들은 얼마든지 있지요. 이들은 사람들의 의견에 민감하게 반응하고 심지어는 진실과 정의마저도 무시하면서 사람들의 비위를 맞추기 위해 노력합니다.
이런 이들은 곧잘 무시당했다고 느낄 것입니다. 아마 수시 때때로 느낄 것입니다. 식당에 가서 음식 하나를 시키고도 종업원의 합당한 대우를 받지 못했다고 곧잘 화를 낼 것입니다. 이들은 많은 경우에 화가 난 상태로 지낼 것이고 따라서 행복하지 못할 것입니다.
하느님의 자녀인 우리들은 함부로 무시당할 수 없습니다. 우리의 존재는 사람들의 시선에서 나오는 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하느님의 사랑을 받는 자녀들이고 하느님을 사랑하는 이들의 합당한 존중을 늘 받고 있는 이들입니다. 세상 사람들은 이런 우리들을 철저하게 무시하려고 들 것입니다. 하지만 용기를 내십시오. 주님께서 세상을 이기셨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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