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들은 언제나 은총이 지나가고 나서야 그 은총의 존재를 실감하게 됩니다. 사람들은 보이는 것에 익숙해져 살아가기 때문에 보이지 않는 것에 늘 둔감하게 반응합니다. 그리고 실제로 우리가 살아가는 환경 속에서 우리에게 영향을 미친 것은 보이는 것이기보다는 보이지 않는 것인 때가 더 많습니다.
우리는 누군가와의 대화 가운데 왜 화를 낼까요? 상대가 내뱉는 말은 물리적인 음파의 진동에 불과합니다. 우리가 화를 내는 이유는 상대의 그 말 속에 내포된 것들 때문이지요. 그것은 보이지 않는 것입니다. 다만 우리가 듣고 분석하고 알아내는 것이지요. 여러분들 중에 누가 볼리비아에 놀러를 와서 사람들이 여러분들에게 빈정거리는 말을 하거나 비꼬는 말을 한다고 해서 여러분들이 화를 내지는 않을 것입니다. 왜냐하면 그 말을 알아듣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이처럼 우리는 사실 외적인 것들, 즉 우리의 감각으로 감지되는 것들에 좌우되는 것이 아니라 보이지 않는 것들에 더 영향을 받고 살아가는 것입니다. 그러한 보이지 않는 것들 가운데 가장 중요한 것이 바로 하느님으로부터 내려오는 은총입니다. 하느님의 은총은 무엇보다도 우리의 삶을 유지시키고 있지요. 인간의 목숨은 자기 자신에게 달린 것이거나, 주변 환경에 달린 것이기보다 가장 최우선적으로 하느님의 자비에 달린 것입니다. 하느님께서 우리에게 매일을 선물하시기 때문에 우리가 살아가는 것이지요. 그리고 그 밖의 모든 것들도 곁들여 받게 됩니다. 재주가 있는 사람은 재주가 있는 대로 축복을 받은 것이고, 재물이 넉넉히 있는 이는 그대로, 또 온전한 신체를 가진 것만 해도 하느님의 축복이 가득한 것인 셈이지요.
그러나 우리는 이미 가진 것들은 ‘나의 것’이라고 생각하고 그 밖의 것들을 찾아 다닙니다. 우리가 이미 가진 것 외의 것들을 찾아 다니다가 그것들이 내 손 안에 들어오면 또다시 새로운 것들을 찾아 다니지요. 누군가와 사랑에 빠지고 싶어 안달이 나다가 사랑에 빠져서 그와 결혼을 하고 나면 곧 상대에게 지루함을 느끼고 새로운 관계를 꿈꾸곤 합니다. 차 한 대만 있어도 참 좋겠다던 이가 이미 가진 차를 두고 새로운 메이커의 차를 꿈꾸곤 하지요. 집에 옷이 산더미처럼 쌓여 있는데도 늘 신상 제품을 사지 못해 안달을 하곤 합니다.
따라서 당연히 우리에게 주어지는 은총을 소홀히하기 일쑤입니다. 사실 거의 생각을 하지 않지요. 우리의 삶은 당연히 주어지는 일상적인 것이라 생각을 하고 더는 감사드릴 줄을 모르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면서도 필요한 때가 되면 늘 하느님을 찾지요. 자신에게 필요할 때만 찾는 존재가 되는 것입니다.
참으로 안타까운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필요한 때에만 하느님을 찾는 사람은 하느님도 그가 필요한 때에만 찾게 될 것입니다. 헌데 이걸 어쩐단 말입니까? 하느님에게 과연 우리가 필요할까요? 우리가 우리의 의지를 봉헌하지 않는데 과연 하느님이 우리를 쓰시려 하실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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