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이 평소에는 공기의 소중함을 알지 못합니다. 하지만 코에 문제가 있거나 숨이 차거나 물 속에 잠수하거나 해서 공기가 부족하게 되면 그제서야 공기의 소중함을 알게 되지요. 그리고 그 관심조차 없던 공기가 실은 우리의 생명의 가장 기본을 지탱하고 있었음을 알게 되는 것입니다.
사람들은 평소에 ‘하느님’과 그분의 선하심의 필요성을 알지 못합니다. 왜냐하면 그것을 이미 ‘호흡’하고 살아가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그 호흡이 중지가 될 때, 즉 스스로의 그릇된 선택, 즉 죄악으로 인해서 더는 하느님의 은총 속에 살아가지 못하게 될 때에야 비로소 그 중요성을 깨닫게 되는 것이지요.
헌데 여기에서 더 웃긴 일이 벌어지곤 합니다. 사람들은 잃어버린 소중한 것을 그분을 통해서 찾지 않고 자신의 욕구를 통해서 얻고자 합니다. 그래서 사람들은 쾌락에 빠져들게 되는 것입니다. 돈을 벌고, 명예를 얻고, 권력을 탐해서 많은 것들을 누리려 하고 즐기려고 하지요. 그리고 그렇게 열심히 영혼을 채우려고 해 보지만 그러한 것들 따위로 영혼의 근본적인 갈망이 채워질 리가 없습니다. 그래서 사람들은 공허해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 공허감을 더한 쾌락으로 채워보려고 안간힘을 쓰는 것입니다.
목이 마르면 물을 마셔야 하지 탄산음료를 마시면 안됩니다. 그러면 일시적으로 목을 축일 수는 있어도 결국 목이 더욱 타게 됩니다. 진정한 생수를 찾아 목을 축여야 합니다. 그래야 우리가 비로소 안정이 되고 기쁨을 되찾을 수 있습니다. 세상 안에서 안정을 얻기 위해서 돈과 지위를 얻고자 그토록 애를 쓰지만 번번이 무너지고 마는 현실을 체험하는 우리들입니다. 이제는 방향을 바꾸어 하느님을 바라보아야 합니다. 그것이 ‘회개’의 의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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