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는 견진성사가 있었습니다. 주교님이 오셨고 예식은 성대하게 치루어졌지요. 하지만 가만 보면 늘 일을 하는 사람만 일을 합니다. 일을 하지 않는 사람은 거의 아무것도 하지 않고 이리 저리 눈치만 보면서 이름 나는 일에는 최대한 앞으로 나서지요. 하지만 그들은 아무도 바라보지 않는 일들, 화장실 청소, 의자 치우기, 강당 청소와 같은 일들에는 전혀 손을 내밀지 않습니다. 그러는 동안 그 일들은 언제나 일하는 이들의 몫이 되지요.
그러나 그런 위선자들의 안락함은 거짓 안락함입니다. 그들은 일을 기피하는 그 순간은 육체적으로 편안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정신은 더욱 바쁘지요. 자신이 그 일에 다가서지 않게 하기 위해서 언제나 자리를 피해야 하고 핑계거리를 만들어 내어야 하니까요. 그러니 그들은 정신적으로 더 피곤한 셈입니다. 그러는 동안 순진하게 일할 거리를 앞에 두고 일을 하는 사람은 육신은 조금 수고스러울지라도 마음은 편안한 셈입니다. 할 일을 할 뿐이니까요.
다만 때로 일어나는 일들 중의 하나가 ‘분노’입니다. 일하는 이들이 일하지 않는 이들을 보고 그들의 게으름에 분노를 일으키는 것이지요. 하지만 이는 그릇된 생각에서 기인하는 것입니다. 일하는 이들이 얻는 것과 일하지 않는 이들이 결과적으로 얻는 것에 대한 인식의 부족에서 나오는 것이지요. 이게 과연 무슨 말일까요?
일하는 이들, 즉 일거리를 앞에 두고는 묵묵히 자신이 해야 할 일을 하는 이들은 그렇게 일하는 동안 자신의 내면 안에 소중한 가치들이 점점 더 늘어납니다. 인내, 겸손, 온유, 사랑과 같은 가치들을 조금씩 늘려 가는 것이지요. 그리고 그런 자신의 내적 경향은 일상 안에서도 빛을 발하기 시작합니다. 가정 안에서 직장 안에서 자신이 쌓아온 내적 가치들은 찬란히 빛을 발하고 참으로 소중한 사람이라는 것이 드러나게 되는 것이지요.
반면 이름나는 일에만 자신을 내세우고 나머지 일들을 요리조리 피하는 사람은 자신의 일상도 그렇게 꾸려 나가게 마련입니다. 그들은 집 밖에서는 ‘위선자’가 될 수 있어도 결국 집안에서는 본모습을 감출 수 없는 것이지요. 그래서 다투고 싸우는 것이 일상이 됩니다. 동창 모임에만 나가면 준수한 사람인데 집안에서는 개차반인 사람이 있는 이유는 바로 이것입니다. 자신의 본모습을 밖에서는 얼마든지 감출 수 있기 때문이지요.
일하는 사람은 이미 축복을 받고 있는 중입니다. 그리고 일하지 않는 사람은 그 자체로 자신에게 어두움을 준비하고 있는 중이지요. 일하는 이들은 자신의 능력을 키워 더 큰 문제도 더 손쉽게 다루게 될 것이고, 반대로 요리조리 피하기만 하는 이들은 아주 사소한 문제에도 끙끙대고 투덜대면서 점점 친구들을 잃어가게 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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