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적 바라봄을 위해서 현세의 바라봄을 절제할 필요가 있습니다. 우리가 세상 것에 길들여져 있는 동안은 거룩한 바라봄을 올바로 이해하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성체 안에 모셔진 예수님의 영광을 바라보기 위해서는 우리가 직접 두 눈으로 보는 것을 넘어서 있는 것들을 바라보는 훈련을 해야 합니다. 그래서 영적 장님은 두 눈은 분명히 사물들을 바라보면서도 영적으로 그 무엇도 바라보지 못하는 사람입니다. 그러나 일상적인 생활을 유지하는 데에는 아무런 하자가 없고 세상 사람들과의 관계는 거의 완벽하다고 할 정도로 잘 가꾸어 나갑니다. 다만 ’거룩함’에 대해서는 아무것도 모르는 이들입니다. 다시말해 거룩하고 영적인 것들은 그들에게는 존재하지 않는 것과 마찬가지인 상태로 살아갑니다.
요한 복음을 읽어보면 예수님과 군중들 사이에서 참으로 엉뚱한 대화를 주고받는 모습을 살펴볼 수 있습니다. 둘의 관점이 완전히 다르기 때문이지요. 세상 사람들이 바라보기에 예수님은 정말 말도 안되는 이야기만 전개하는 사람에 불과했습니다. 하지만 예수님은 그들의 눈멀음을 알고 있으면서도 별달리 그들의 구미에 맞게 설명해 줄 수 없는 상황에 처해 있기도 합니다. 왜냐하면 눈을 열어야 하는 것은 그들이기 때문이지요. 예수님이 눈을 닫고 그들이 만족할만한 답을 하는 것은 바람직한 일이 아니었던 것입니다.
우리는 훗날 정화의 시기를 거치게 될 것입니다. 그리고 그때에 가서야 똑똑하게 알게 될 것입니다. 우리가 얼마나 장님이었던가 하는 사실을 말이지요. 그리고 우리에게 하느님을 거스르는 큰 죄가 없다면 저마다의 장님 상태에 따라 정화의 시기를 거치게 됩니다. 현세의 삶을 벗어나 은총의 삶으로 건너가는 과정이지요. 그것을 가톨릭 교리에서는 ‘연옥’이라고 표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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