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분이 그를 규정하는 것이 아닙니다. 그의 삶이 그의 직분을 규정하게 됩니다. 한 사람이 사제라고 해서 그가 사제인 것이 아닙니다. 그가 사제의 일을 할 때에 비로소 사제가 됩니다. 직분의 수여는 외적 표지일 뿐입니다. 보다 중요한 것은 그 직분에 포함된 일을 성실히 수행해 내는 것입니다. 의사가 치유하지 않고 돈만 밝히면 그는 의사가 아니라 고리대금업자가 됩니다. 하지만 의사 자격증이 없다 하더라도 실제로 사람들의 아픔을 보살피고 그들의 상처를 감싸주면 그는 훌륭한 의사인 셈이지요. 비록 교사 자격증이 없다 하더라도 한 사람이 자신이 가진 것을 아직 못배운 이들에게 전해 주려고 노력하면 그는 훌륭한 선생님입니다. 하지만 온갖 타이틀을 다 지니고도 자신의 교만이 타인에게 필요한 지식을 전해주는 것을 가로막는다면 그는 아무 짝에도 쓸모 없는 돌덩이에 불과한 셈입니다.
그리스도인은 성당을 다니는 사람이 아닙니다. 착각하지 마십시오. 장사꾼도 성당을 다닐 수 있습니다. 자신의 가게에 더 많은 사람을 끌어들일 수 있다면 그는 기꺼이 성당에 나가고 세례도 받고 교무금도 낼 것입니다. 그렇게 사제의 신임을 얻고 사제가 자신의 가게에 사람들을 데리고 오기를 기다리겠지요. 그는 신자가 아닙니다. 그는 장사꾼입니다.
그리스도인은 그리스도를 사랑하고 그분의 말씀을 듣고 그분의 가르침을 실천하는 이를 말합니다. 그래서 ‘익명의 그리스도인’이 존재합니다. 비록 그리스도에 대해서 배울 기회가 없어 명시적으로 그리스도를 따른다는 외적인 표지를 입지는 않았지만 이미 그리스도의 가르침을 알고 그것을 실천하려고 열심히 노력하는 이들을 말합니다. 비록 우리의 선조들 가운데에는 교리 책자도 접하지 못하고 선교사 사제도 만나지 못해서 그리스도를 전혀 알지 못했지만 이미 그리스도의 사랑의 계명에 따라 하늘의 뜻을 두려워할 줄 알고 이웃에게 함부로 해코지를 하지 않고 가능하면 열심히 도우고자 노력했던 이들이 있습니다.
우리는 우리가 지닌 하느님의 자녀라는 신분대로 살아가야 하느님의 자녀가 됩니다. 성당 좀 안빠지고 나가고 교무금 빠지지 않고 내고 때마다 판공을 본다고 하느님의 자녀라고 착각해서는 안됩니다. 그러한 것들도 지켜야 하지만 그 이전에 내면으로 하느님을 진심으로 사랑하고 이웃을 사랑하는 것을 더욱 지켜야 마땅한 것입니다.
피상적이고 가식적인 인물이 되지 마십시오. 하느님의 나라는 사제와 커피숍에 가서 커피를 한 잔 한다고 우리에게 더욱 가까워지는 것이 아닙니다. 그렇다고 주교님과 같은 행위를 한다고 해서 이루어지는 것도 아닙니다. 하느님의 나라는 이미 우리 가운데 있습니다. 우리가 자기 자신을 버리고 십자가를 지기 시작할 때에 하느님의 나라는 이미 우리 가운데 작은 씨앗의 형태로 시작되는 것이지요. 하지만 본당에서 아무도 알아주지 않는 봉사의 행위는 철저히 무시하면서 자신의 이름이 공공연히 알려져서 사람들이 찬사를 던질 만한 일에는 기꺼이 나서는 사람은 위선자일 뿐입니다. 그들의 누룩이 우리 사이에 스며들지 않도록 조심하십시오. 신앙의 순수성을 지키고 보다 열심히 앞으로 나아갈 수 있게 되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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