간밤의 꿈에 ‘차원’에 대해서 설명하고 있었습니다. 1차원은 선입니다. 시작점과 끝점이 있지요. 하지만 우리가 마치 실의 양 측을 구부려서 맞댈 수 있듯이 우리는 1차원의 시작점과 끝점을 마주하게 할 수 있습니다. 그러면 그 두 차원이 서로 연결되고 통하게 되는 것이지요.
2차원은 A4지에 비길 수 있습니다. 2차원은 1차원의 선을 나열해서 만들어진 면입니다. 따라서 이 면도 그 시작하는 선이 있고 마치는 선이 있는 것입니다. 그리고 우리는 이 A4용지도 구부려서 접을 수 있습니다. 그러면 2차원의 시작점과 끝점도 서로 마주하게 되는 것이지요.
3차원은 이 2차원의 면을 나열해서 생기는 ‘공간’을 말합니다. 따라서 이 공간도 경우에 따라 왜곡시켜 시작점과 끝점을 마주하게 할 수 있습니다. 우리가 ‘블랙홀’이라고 부르는 것이 바로 그 공간의 왜곡 지점이고 그 반대편에는 ‘화이트홀’이 존재할 수 있으며 그 사이를 가로지르는 ‘웜 홀’이 존재할 가능성이 있다고 하는 것입니다. 하지만 우리에게는 공간을 원하는 대로 우그러뜨릴 능력은 아직 없습니다. 다만 그 이론만 이해하고 우주를 관측해서 블랙홀의 존재를 파악할 뿐이지요. 하지만 나름 영화상으로 이를 표현하려고 노력했고 최근의 ‘인터스텔라’라는 영화가 바로 그것을 표현하고 있는 셈이지요.
4차원은 무엇일까요? 3차원의 연속된 지점으로 여기에는 ‘시간’이라는 차원이 더해지는 것입니다. 따라서 이 4차원을 우그러뜨릴 수 있으면 우리는 ‘시간여행’을 할 수 있게 되는 것이지요. 시간의 시작점과 끝점을 넘나들 수 있는 것입니다. 이미 3차원의 공간의 왜곡부터 우리가 이룰 수 없는 소설이 시작되는 셈이니, 이 4차원의 왜곡은 그야말로 우리에게는 소설이 아닐 수 없습니다.
꿈에 누군가에게 이를 설명하고 있었습니다. 그러면서 우리 하느님은 전능하신 분이고 시간에 종속되는 분이 아니라서 매 순간의 시간에 가장 적합한 것을 배분하시고 그 시간들이 서로 연결되어 있게 만든다는 이야기를 하고 있었습니다. 즉, 예수님의 시간은 흘러가는 시간 가운데에서 ‘완성’에 이른 시간이었고 우리 역시도 그 완성을 추구하면서 예수님의 시간에 맞닿을 수 있다는 이야기를 했지요. 즉, 우리는 전혀 다른 형태로 4차원을 서로 연결시키는 셈입니다. 미사라는 것은 결국 예수님의 최후의 만찬의 시간을 고스란히 현재화 하는 것이니 이 역시도 4차원을 서로 맞물리게 하는 셈입니다.
제가 하려는 설명이 올바로 이해되고 있나 모르겠습니다. 우리는 길게는 80년, 90년을 살고 짧게는 언제 떠날 지 모르는 이들이지만, 우리의 시간들은 서로 맞닿아 있는 셈이지요. 그리고 우리가 지금의 세상을 떠나고 나면 그 뒤에 마주할 세상에서는 더는 ‘시간’과 ‘공간’의 제약을 받지 않게 됩니다. 그렇다면 그 때에는 우리가 이 세상에서 마주하게 된 시간을 바탕으로 살게 되겠지요. 충만한 시간을 말입니다.
물론 반대로 헛된 시간을 보낸 이들은 공허한 채로 남아 있게 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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