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저 좋은 마음과 선이 가득한 마음은 전혀 다른 두 성질의 것입니다. 아이들은 맑은 마음을 지니고 있습니다. 그것은 마치 투명한 그릇과도 같은 것이지요. 그래서 속에 있는 것을 그대로 드러냅니다. 하지만 그 안에는 선도 악도 없습니다. 오히려 사실을 말하자면 ‘악에 기울어질 경향’을 더 가지고 태어나는 것이 보통이지요.
사람들은 무엇이 악인지 알지 못합니다. 아이들이 무슨 죄를 지을 수 있겠나 생각합니다. 하지만 죄라는 것은 뚜렷한 법적 규정을 어기는 것에서만 비롯하는 것이 아닙니다. 마음 속에 참된 선이신 하느님을 향한 방향성이 주어져 있지 않을 때에, 마음은 이미 하느님 아닌 것들로 기울기 시작하는 것입니다.
얼마 전에 4살쯤 되는 한 꼬맹이가 엄마 휴대폰을 가지고 놀고 있었습니다. 헌데 엄마가 다시 그 휴대폰을 되찾으려고 하자 아이가 고함을 지르기 시작을 합니다. 엄마를 향한 애정이나 엄마의 소중함은 온데간데 없고 휴대폰에 집중하기 시작한 것입니다. 당장에 두 눈을 즐겁게 해 주는 그 휴대폰을 자신의 손 안에 쥐고 있기 위해서 엄마를 상대로 맞서기 시작하는 것이지요. 바로 탐욕의 시작이고 소중한 가치를 저버리는 죄의 시작인 셈입니다.
사람들은 좋은 마음을 지닐 수 있습니다. 달리 말하면 악한 의도가 없는 마음이지요. 그리고 이 마음을 통상적으로 지니고 살아갑니다. 어느 엄마든지 자기 자식은 착하다고 할 때에 바로 그 통상적인 ‘착함’을 말하는 것입니다. 하지만 선함에 이르기 위해서는 개인의 의지적 노력이 필요합니다. 선은 내면에 차곡차곡 쌓이는 것이고 그 찬란한 가치는 숨길래야 숨길 수 없이 드러나는 것입니다.
차를 처음 구입하면 ‘길을 들인다’고 합니다. 어느정도 속도를 내서 저마다의 부품들이 들어맞아 군더더기 없이 필요한 부분이 적절히 마모되어 서로 돌아아게 한다는 것인데, 우리 영혼에도 그러한 길들임이 필요합니다. 그래서 모난 것은 깎아내고 좋은 것은 더욱 부드럽게 움직일 수 있어야 합니다. 영혼을 훈련하는 사람은 길든 차처럼 원할 때에 원하는 덕목을 꺼내어 놓을 수 있게 됩니다. 사랑이 필요한 곳에는 사랑을 주고, 슬픔이 필요한 곳에는 함께 슬퍼하는 훌륭한 영혼이 되는 것이지요.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