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말한다. 이 세대가 지나기 전에 모든 일이 일어날 것이다. (루카 21,32)
한 세대는 한 사람이 태어나고 죽는 기간을 말합니다. 이는 구체적인 몇십년의 기간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바로 한 인간에게 일어나는 일을 말하는 것이지요. 우리가 세상에 태어나서 자의식을 온전히 갖기 시작하고부터 모든 일을 겪게 되는 것입니다.
즉 우리를 향한 위협을 느끼게 되는 것이지요. 죽음의 위협을 느끼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는 동안 우리는 열심히 마음을 들어높이고 하느님을 향해 돌아가려는 갈망을 지녀야 하는 것이지요. 우리가 세상에 집착하는 그만큼 죽음의 위협은 우리를 더욱 찾아들게 되고, 반대로 우리가 하느님을 갈망하는 만큼 우리는 죽음의 위협에서 더욱 자유롭게 되는 것입니다.
우리 안에 자라나는 이 방향성을 우리는 잘 파악해야 합니다. 우리가 이러한 것들을 열렬히 깨닫는다는 사실이 바로 우리 자신의 마지막 때가 가까워온다는 것을 의미하기 때문입니다.
아마 제가 하는 설명이 무슨 뜻인지 올바로 이해하지 못하리라 생각합니다.
이런 상상을 해 볼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인간 안에는 하나의 투명한 유리잔이 하나씩 주어집니다. 그리고 자신의 삶을 저마다의 선택으로 이루어감에 따라서 그 잔은 채워지기 시작합니다. 그 채워짐의 물리적 시간은 중요하지 않습니다. 누군가는 더 빨리 채울 수도 있고 다른 누군가는 더디게 채울 수도 있습니다.
헌데 그 잔의 근본 목적은 하느님의 ‘사랑’을 채우는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사람은 하느님을 사랑하는 법을 배우고, 이웃을 제 몸처럼 사랑하는 법을 배워야 하는 것입니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이와는 정반대로 이웃을 향한 증오를 키워 나가고, 자신의 이기심과 탐욕을 키워 나가는 이들이 있습니다. 이렇게 사람은 자신 안에 주어진 잔을 아주 향기로운 순수한 향액으로 채우던지, 아니면 반대로 지극히 더러운 쓰레기물로 채우던지 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 잔은 그 인간의 선택의 강도에 따라서, 그 나날의 행업에 따라서 더욱 더 커져가고 채워져가는 것이지요.
그 잔이 가득 찰 지경에 이르게 되면 인간은 둘 중의 하나를 느끼게 되는 것입니다. 즉, 사랑으로 잔을 가득 채운 사람은 ‘희망과 기쁨’으로 부풀어 오르게 되고, 반대로 자신의 이기심으로 잔을 가득 채운 사람은 ‘불안과 초조’에 시달리게 되는 것이지요. 이것이 바로 마지막 때의 징표가 됩니다. 한 인간 안에 점점 자라나가는 것이 그 자신에게 신호를 주는 것이지요.
바로 이러한 일이 ‘한 세대’가 지나기 전에 반드시 각자에게 일어나는 것입니다. 즉 우리가 태어나서 자의식을 갖추고 살기 시작하면서 죽기 전까지 이러한 일들이 각자에게 일어나는 것이지요. 그리고 ‘죽음’은 이 모든 채워짐의 결과를 돌려주는 것입니다. 향액으로 잔을 채운 사람은 그에 합당한 보상을, 반대로 더러움으로 잔을 채운 사람은 그에 해당하는 벌을 받게 되는 것입니다.
지금 제가 열심히 비유로 설명하는 것을 여러분들이 올바로 알아들어 깨닫고 당장이라도 스스로를 점검하고 올바른 길을 향해서 매진할 수 있게 되기를 바랍니다. 그러나 찾는 사람에게는 보이고 찾지 않는 사람에게는 모든 것이 우스꽝스러운 말일 뿐입니다. 그래서 그들이 보아도 보지 못하고 들어도 듣지 못하는 일이 펼쳐지게 되는 것이지요. 그러나 귀 있는 자는 듣게 되는 것입니다. 스스로 귀를 막는 귀머거리와 스스로 눈을 닫는 장님에게는 아무리 외치고 가르쳐 보아야 소용이 없는 노릇입니다.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