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보는 사물은 사실 그 사물에 닿은 빛이 반사되어 우리 눈에 들어와 우리의 뇌가 그것이 거기 있는 사물이라고 인식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마술’이라는 것은 교묘한 트릭으로 우리가 어떤 사물이 거기 있다고 믿게 하거나 거기 없다고 믿게 만드는 것이지요. 그래서 우리가 탄성을 자아내게 만드는 것입니다.
실제로 무언가가 있는가 없는가 하는 것을 전적으로 ‘시각’에만 의지하면 우리는 속게 됩니다. 특히 눈으로 볼 수 없는 것을 눈으로 찾으려고 하면 우리는 거의 속는다고 볼 수 밖에 없습니다.
소리는 볼 수 없습니다. 냄새는 볼 수도 들을 수도 없습니다. 맛이라는 것은 입 안에 넣어 확인하기 전까지는 존재하지 않는 것이지요. 감각할 수 있는 것들은 서로 영역이 달라서 제 나름의 감각에 가 닿지 않으면 그것을 확인할 방법이 없습니다.
하느님은 우리의 믿음으로 느낄 수 있는 분입니다. 거룩한 것과 영적인 것들도 마찬가지이지요. 그래서 미사는 ‘믿음의 행위’가 됩니다. 믿음이 없으면 미사는 지겨운 예식에 불과하게 되는 것이지요. 그러나 믿음이 있는 사람은 그 가치를 올바로 알게 되는 것입니다. 그 안에서 예수님과의 만남을 이루고 그 사랑을 담뿍 받는 것이지요. 기도 또한 마찬가지입니다. 미사는 기도의 완성인 셈이고, 기도하는 행위 자체는 믿음에서 우러나오는 것이지요. 우리가 믿음이 없다면 기도는 다른 목적을 지닐 뿐입니다.
사실 우리는 ‘믿음’을 바탕으로 보고, ‘믿음’을 바탕으로 듣고, ‘믿음’을 바탕으로 냄새맡고 맛보고 느끼곤 합니다. 우리가 믿으면 없던 느낌도 생겨나고 우리가 믿으면 존재하는 느낌도 사라지곤 하지요. (아직 이 말은 이해가 쉽지 않으리라 생각합니다.)
그리고 하느님은 이 믿음에 응답하시는 분이십니다. 우리가 믿는 것은 그대로 이루지게 됩니다. 한 사람에게 산을 옮기는 것은 일도 아닌 셈이지요. 그에게 그 옮겨진 산은 존재하지 않는 셈입니다. 우리가 아무리 험난한 길을 걷더라도 하느님과 함께 머무르고 있다는 믿음 속에서 우리는 안전하게 다닐 수 있습니다. 그리고 하느님은 우리에게 영원한 생명을 약속하시는 분이라는 것을 믿기 때문에 전혀 불안하지 않을 수 있지요.
믿음은 불가능을 가능하게 합니다. 믿음을 지니는 것은 참으로 중요한 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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