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자는 일한 값을 받을 자격이 있습니다. 하지만 열심히 일을 하고 주인으로부터 그 일한 값을 받는 목자와, 값을 받기 위해서 일을 하는 목자는 완전히 다른 모습을 지니고 있습니다.
전자는 일에 최선을 다합니다. 즉, 목자는 양을 사랑하고 양을 보살핍니다. 양들의 굶주림을 해소하고 목마름을 채워주며 더우면 서늘한 곳으로 추우면 따뜻한 곳으로 양들을 몰고 갑니다. 행여 잃어버리 양이 있으면 나머지 양들을 잠시 한 곳에 몰아 두고 잃은 양을 찾아 나서기도 합니다. 양들은 목자를 사랑하고 따르고 또 그렇게 일을 잘하는 목자를 둔 주인도 그 목자를 사랑합니다. 그리고 때가 되면 목자는 성실히 일한 값을 받습니다.
후자는 삯꾼입니다. 그는 수당에 목숨을 겁니다. 더 많은 수당을 얻을 수 있는 기회를 노리고 주인이 볼 때는 열심히 일하는 척 하다가 주인이 보이지 않는다 싶으면 양의 털을 깎아 옷을 해 입고, 양의 젖을 짜서 마시고, 심지어는 양을 잡아먹기도 합니다. 그리고는 늑대가 와서 잡아갔다고 둘러대곤 하겠지요.
이 둘의 일하는 방식은 이처럼 완전히 다른 것입니다. 그래서 그 내면의 모습도 완전히 다릅니다. 앞의 목동은 내면이 충만하고 사랑으로 가득하고, 뒤의 목동은 언제나 불만족스럽기 짝이 없고 주인을 속이려는 마음과 주인에 대한 불평이 입에서 떠나는 날이 없습니다.
목자는 무턱대고 교계제도만을, 사제만을 의미하는 것이 아닙니다. 한 가정을 돌볼 의무를 맡은 가장도 목자이고, 학교의 학생들을 데리고 있는 선생님도 목자입니다. 모든 그리스도교 신앙인들은 저마다의 자리에서 다른 이에 대한 ’책임’을 맡고 있는 이상은 ‘목자’가 되는 것입니다. 정치인도 목자가 될 수 있고, 예능인도 목자가 될 수 있으며, 기업인도 목자가 될 수 있습니다.
과연 주인이 돌아오는 날, 우리는 그분 앞에 어떤 이야기를 꺼내 놓을 수 있을까요? 아니, 우리가 우리 입으로 우리 스스로에 대해서 증언하는 일은 없을 것입니다. 우리의 양들의 역할을 맡았던 이들이 우리를 대신해서 전능하신 그분 앞에 증언하게 될 것입니다. 불행합니다. 삯꾼이었던 목자여. 그대들은 양들의 환심을 사려고 했지만 양들은 그대들의 본심을 이미 알고 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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