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의 영혼은 하나의 덩어리가 아니라 다양한 구성요소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지성과 감성과 의지가 대표적인 그 세가지입니다. 지성은 학습에 연관되어 있고, 감성은 느낌에 연관되어 있고, 의지는 사랑에 연관되어 있습니다.
우리는 배우면서 살아가는 사람들입니다. 우리가 언어를 모른다면 말 때문에 기분이 상할 일도 별로 없을 것입니다. 가운데 손가락을 내미는 것이 무슨 상징인지 모른다면 그걸 두고 화낼 일도 없을 것입니다. 반대로 거룩한 미사 안에서 쓰이는 단어들과 상징들이 무엇인지 모른다면 미사는 반쪽짜리가 되고 말지요. 어린양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모르는데 아무리 하느님의 어린양을 노래한다고 해서 그것이 느껴질 리가 없습니다. 그래서 사람은 필요한 것을 배워야 합니다. 그리고 반대로 불필요한 것을 쓸데없이 배우는 것을 삼가해야 합니다. 그러나 오늘날 쓸모없는 지식과 정보가 너무나 많이 돌아다니고 그러한 것을 모조리 주워담고 있으니 우리의 영혼은 당연히 쓰레기통이 되고 맙니다.
우리는 느낍니다. 기분이 좋다가 나쁘다가 하고 슬프다가 기뻐 웃기도 합니다. 화를 내기도 하고, 불안해 하기도 하지요. 이런 모든 감정들이 우리 안에 숨어 있다가 제 역할을 해야 할 때에 튀어나오는 것입니다. 사실 이 감정은 굉장히 강력한 것입니다. 우리는 적절한 훈련이 이루어지지 않은 상태에서 감정이 먼저 앞서고 그 뒤에 나머지 것들이 뒤따르는 경우가 적지 않습니다. 우리가 가장 머리 회전이 빠른 시기는 바로 누군가와 다투고 싸울 때입니다. 우리의 분노가 우리를 가장 명석하게 상대를 비판할 요소를 찾게끔 지성이 움직이도록 만드는 것이지요.
마지막으로 살펴보아야 할 것은 ‘의지’입니다. 우리는 무언가를 하고 하지 않는 선택을 할 수 있는 ‘의지’가 있습니다. 귤을 먹을 것인가 사과를 먹을 것인가를 선택하는 아주 단순한 선택에서부터, 하느님이냐 세상이냐를 선택하는 인간존재의 핵심적인 선택에 직면하기도 하지요. 그리고 그 선택 앞에서 우리의 ‘의지’가 작용하는 것입니다. 따라서 바로 이 의지에서 사랑이 나오기도 하고, 정반대로 바로 이 의지에서 죄악이 나오기도 하는 것입니다.
이 세가지 요소가 우리 영혼 안에 부분을 차지하고 작용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사실 육신이라는 것은 이 영혼 안에서 세가지 요소가 어우려져 내려진 결정에 따르는 시종일 뿐이지요. 하지만 반대의 경우도 있으니 우리 육신이 원하는 것을 위해서 위의 세가지 요소가 힘을 합쳐 육신의 욕구를 채우는 경우도 있는 것입니다. 이는 순서가 완전히 뒤바뀌어 버린 셈이지요. 육신의 욕구를 따르는 영혼의 상태는 참으로 불행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왕이 자신의 지휘권을 버리고 종에게 굽신대는 셈이니까요.
우리는 과연 어떤 종류의 사람일까요? 육신을 따르는 뒤바뀐 사람일까요? 아니면 감정을 앞세우는 사람일까요? 아니면 지식이 모자라서 우둔한 사람일까요? 혹은 의지가 너무나 나약해서 다른 것들이 내 내면을 마음대로 지배하게 두는 사람일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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