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무렵 큰 환난에 뒤이어 해는 어두워지고, 달은 빛을 내지 않으며, 별들은 하늘에서 떨어지고, 하늘의 세력들은 흔들릴 것이다. (마르 13,24-25)
우리는 이런 이야기들을 들으면 ‘언제, 어떻게?’가 먼저 떠오릅니다. 그리고는 우리 주변을 살펴보면서 혹시 이런 징조가 없나 생각하고 그런 비슷한 징조에 대한 이야기를 들으면서 두려워하곤 하지요. 때론 그러다가 엉뚱한 이단에 빠지기도 하구요.
역사적으로 상황이 정말 좋았던 때, 만백성들이 아무런 걱정 없이 살던 때는 언제일까요? 사실 우리는 저마다 어린 시절에는 걱정이 없었습니다. 그 이유는 그 시대에 다른 일이 일어나지 않아서가 아니라 우리가 그것을 파악할 능력이 없었기 때문이지요. 그래서 그런 일들이 우리에게 전해지지 않은 것입니다.
저는 80년대에 구미에 신평동에 살면서 금오공대 대학생들이 경찰과 대치하는 장면을 여러번 목격했습니다. 하지만 초등학생(당시에는 국민학생)의 눈으로 바라본 그들의 모습은 그저 흥미의 대상일 뿐이었습니다. 저와 친구는 아파트 옥상으로 올라가서 그 모습을 구경하곤 했지요. 그러다가 최루 가스가 날라와서 된통 고생을 하기도 했습니다. 대학생들은 경찰을 피해 도망치다가 우리 아파트 담을 넘어 들어오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그런 모든 사건들이 무엇 때문에 벌어졌고 어떤 이유로 벌어졌는지를 알기에는 초등학생이었던 저는 너무나 순진했습니다.
지금은 어른으로서 주변의 이런 저런 일들을 더욱 소상히 알게 되고 파악하게 되었습니다. 한동안은 그런 주변의 사건들 때문에 속을 많이 썩였지요. 중요하다고 저마다 부르짖는 그 일들을 들으면서 정말 이대로 세상에 종말이 다가오는 것인가 싶기도 했습니다.
세상에는 늘 일이 벌어지고 있습니다. 인간이 자신의 어둠에서 벗어나지 않는 이상 세상은 늘 그릇된 일들이 자행되게 마련입니다. 우리가 쉽게 넘어가는 유혹 가운데 하나는 이 세상이 뭔가 크게 수술을 받으면 순식간에 바뀌어서 금방이라도 유토피아가 올 수 있다는 것입니다. 하지만 그런 일은 ‘절대로’ 일어나지 않습니다.
우리는 우리가 저마다 맡은 책임 안에서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을 구체적으로 실천해야 합니다. 걱정만 늘어놓는다고 바뀌는 것은 하나도 없습니다. 일어나서 설거지라도 하고, 고양이 밥이라도 주고, 그리고 맡은 일 안에서 나 스스로 신앙을 살고 나아가 사람들에게 정의와 평화와 사랑을 가르치면 결국 세상은 변하게 되는 것입니다.
위에 인용한 성경 구절에서 우리는 도대체 언제 저런 징조들이 다가오는가 생각을 합니다. 결론은 저런 징조들은 역사의 어느 때에 최종적으로 다가오기도 하겠지만 보다 중요한 것은 바로 각각의 인간의 성장사와 맞물려 다가온다는 것입니다. 큰 환난이라는 것은 우리가 어린 시절 겪지 않았던 삶의 고뇌, 어른이 되어서 짊어져야 하는 삶의 짐을 말하는 것이고, 해와 달은 우리를 통솔하던 권력들을 말합니다. 돈의 힘이 될 수도 있지요. 그런 권력들이 힘을 상실한다는 의미입니다. 별들은 명예들입니다. 하늘에서 찬란히 빛을 발하는 것만 같던 명예들이 하나씩 떨어진다는 의미입니다. 과연 이것이 무엇을 말하는 것입니까? 바로 우리 개개인의 죽음을 상징하는 것입니다.
세상 전체의 종말은 반드시 다가오게 마련입니다. 하지만 그 때와 시기는 아무도 알지 못합니다. 그러나 세상의 종말 이전에 먼저 다가오는 것이 있으니 바로 우리 자신의 종말입니다. 우리가 죽음에 쓰러지면 우리를 지배하던 세상의 권력들, 재물들, 명예들은 아무런 위력을 발휘하지 못합니다. 그리고 그 순간에 예수님이 구름을 타고 오는 것을 보게 될 것입니다. 세상의 종말이 언제나 올까 걱정하지 말고 우리 자신들의 죽음을 잘 준비할 필요가 있습니다. 우리는 공연한 걱정에 몸담지 말고 우리 자신의 삶을 정성껏 가꾸어 나가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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