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정한 고통이란 무엇이라고 생각 되십니까? 육신의 고통일까요? 육신은 나약합니다. 하느님은 인간의 육신을 완벽한 계획 속에 만드셨지만 우리는 육신을 돌볼 줄 모르고 이런 저런 엉뚱한 것들을 쏟아부어 망가뜨리고 맙니다. 그래서 지금의 이 육신은 언젠가는 무너져내릴 것이 분명합니다. 그래서 육신은 고통을 지니고 있습니다. 때가 되면 무너져 내릴 것이기 때문에 그러하고, 또 그것이 아니라도 언제나 다가오는 불시의 사고 때문에 고통당하게 마련입니다. 그래서 인간의 육신은 원래부터 고통을 겪게 될 운명에 속해 있는 셈이지요. 따라서 우리는 육신의 고통을 껴안는 법을 배워야 합니다.
정신적 스트레는 어떨까요? 우리는 왜 스트레스를 받을까요? 힘든 일을 하고 나면 스트레스가 쌓이는 걸까요? 아니면 왜 스트레스가 쌓이는 걸까요? 일용직 노동자로 온 몸을 굴리면서 열심히 일하는 사람보다 직장에서 책상 앞에 앉아 서류 작업을 하는 이가 더 스트레스가 쌓이는 것 같아 보이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왜냐하면 스트레스는 과한 정신적 활동에서 오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단순히 과한 정신적 활동이기보다는 ‘내가 싫어하는’ 과한 정신적 활동이라고 해야 더 정확할 것 같습니다. 우리는 하기 싫은 것을 억지로 하다 보니 스트레스가 쌓이게 되는 것입니다. 만일 우리가 정말 좋아하는 게임을 한다면 아무리 복잡한 퍼즐을 풀고 있어도 스트레스는 커녕 도리어 즐거움을 느낄 것입니다. 인간의 정신은 바로 내면의 상태에 따라서 스스로 스트레스를 가중시키는 셈이 됩니다.
따라서 참된 고통은 육신의 고통도, 정신의 고통도 아닌 영적 고통이 됩니다. 우리의 내면 가장 깊은 곳이 갈피를 잡지 못하고 있을 때에 정신의 고통도 육신의 고통도 가중되는 것이지요. 하지만 우리가 올바른 길 안에 머무르고 있을 때에는 온 정신과 온 몸을 다해서 하는 일에서 도리어 보람을 느끼게 되는 것입니다.
의인들의 영혼은 하느님의 손안에 있어, 어떠한 고통도 겪지 않을 것이다. 어리석은 자들의 눈에는 의인들이 죽은 것처럼 보이고, 그들의 말로가 고난으로 생각되며, 우리에게서 떠나는 것이 파멸로 여겨지지만, 그들은 평화를 누리고 있다. 사람들이 보기에 의인들이 벌을 받는 것 같지만, 그들은 불사의 희망으로 가득 차 있다.
그들은 단련을 조금 받은 뒤 은혜를 크게 얻을 것이다. 하느님께서 그들을 시험하시고, 그들이 당신께 맞갖은 이들임을 아셨기 때문이다. 그분께서는 용광로 속의 금처럼 그들을 시험하시고, 번제물처럼 그들을 받아들이셨다.
(지혜 3,1-6)
의인들의 영혼이 고통을 겪지 않는 이유는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의인들은 하느님의 뜻 안에 머물러 있고 따라서 그들의 영혼은 고통을 겪지 않습니다. 하지만 그 말이 그들에게 아무런 고통이 없다는 것이 아닙니다. 그들은 엄청난 과업 안에서 정신적인 압박감에 시달리기도 하고, 육체적인 고통, 심지어는 죽음을 감수해야 하기도 할 것입니다. 하지만 이 모든 것은 하느님께서 마련하신 일종의 ‘시험’입니다. 용광로의 금처럼 그들을 시험하시고 그들의 순수성을 더욱 밝히 드러내시는 것이지요.
의인들은 훗날 하느님과 더불어 기뻐하게 될 것입니다. 그러는 동안 악인들은 세상 안에서 아무것도 하지 않으면서 편하고 안락하게 지내려 하지만 결국 그 모든 것에 끝이 있다는 것을 알고 언제나 영적으로 공허함을 지니고 살아가게 되는 것이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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