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희 가운데에서 누구든지 자기 소유를 다 버리지 않는 사람은 내 제자가 될 수 없다. (루카 14,33)
이렇게 생각해 볼 수 있습니다. 저마다 자루 하나가 있는데 어떻게든 그 자루에 가득 가득 채워 넣으려고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이것이 ‘소유함’의 그릇된 개념입니다. 우리는 저마다 자기 소유를 채우려고 기를 쓰고 싸우곤 했었지요. 헌데 그러던 중에 예수님을 만나게 되는 것입니다.
예수님도 자루를 지니고 있습니다. 헌데 그분의 자루는 차원이 다른 크기입니다. 왜냐하면 그분은 하느님이시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그분의 자루는 영원을 담아내고 무한을 담아낼 수 있습니다. 그런 예수님께서 우리에게 당신과 함께 하자고 초대를 하시는 것입니다.
우리의 자루를 버리고 그분의 자루에 동참하는 작은 천조각이 될 것인가, 아니면 계속해서 나의 자루를 고집할 것인가? 바로 그것이 우리에게 다가오는 도전이 되는 것이지요.
우리는 우리의 자루에 ‘자기 아버지와 어머니, 아내와 자녀, 형제와 자매, 심지어 자기 목숨’을 담아 왔었습니다. 그러한 것들이 모두 ‘내 소유’라고 생각해 왔지요. 그러나 이제는 그러한 것들을 내려놓아야 하는 것입니다. 그러면 그때부터는 ‘하느님의 소유’를 자신의 것으로 만들게 되는 것이지요.
보다 실천적인 차원에서 살펴보자면 결국엔 잃는 것이 하나도 없습니다. 다만 전혀 다른 차원으로 지금까지 지켜보아 왔던 것을 보게 될 뿐입니다. 즉, 자신의 아버지는 여전히 자신의 아버지가 될 것입니다. 하지만 전에는 나의 소유의 관점에서만 아버지를 바라보았지요. 그래서 이기적인 관계가 되고 계산적인 관계가 되었다면 이제는 하느님 안에서 아버지를 바라보게 되기에 보다 폭넓은 관계를 이룰 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
우리는 우리가 가지고 있다고 착각하는 것을 다시 살펴볼 필요가 있습니다. 사실 우리가 가질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습니다. 왜냐하면 우리의 자루는 초라하기 짝이 없고 무엇보다도 ‘영원’을 간직하고 있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하느님의 자루에 참여해야 합니다. 그래야 그분으로부터 영원성이라는 선물을 받게 되는 것이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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