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수님의 시간은 언제나 채워짐의 시간이었습니다. 예수님은 때가 차기만을 기다리셨지요. 흘러가는 시간은 중요한 것이 아니었습니다. 때가 차기만 하면 그 시간이 지금 당장이든 몇 년 후이든 상관없이 일을 진행하셨지요.
나자로를 부활 시키실 때에도 3일을 기다리셨습니다. 그 시간이 지나야 때가 차는 것이었기 때문이었지요. 회당장의 딸이나 과부의 아들을 살릴 때에는 지체없이 행하셨습니다. 그것은 그 때가 가장 적합했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이런 예수님의 채워지는 시간을 올바로 이해하지 못하고 우리가 흔히 아는 흘러가는 시간만으로 예수님을 살펴보기 때문에 그분의 존재에 대해서 감각을 상실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예수님은 2000년 전의 분입니다. 한마디로 상당히 낡은 구닥다리인 셈이지요. 하지만 그분의 시간의 채워짐은 바로 그때에 최고조에 달했던 것입니다. 인류를 향한 하느님의 구원 계획은 바로 그 순간에 채워진 것이지요. 그분의 탄생이 준비되기까지 수많은 시간동안 때가 차는 것을 기다리셨고, 결국 그분을 세상에 보내시고 수난과 죽음을 통해서 영광에 이르게 하셨습니다.
예수님은 지나간 사람이 아닙니다. 우리가 우리의 때를 채워갈 때에 다시 그분을 만날 수 있게 됩니다. 우리 역시도 그분의 길을 따라 걸을 수 있고 그분의 때를 함께 채워갈 수 있는 것입니다. 그분의 시간은 충만히 채워졌지만 우리의 시간은 우리의 선택에 따라 채워질 수도, 공허하게 비워질 수도 있는 것입니다.
아무리 돈을 많이 벌어도 마음이 공허한 이유, 아무리 권력을 쥐고 명예를 얻어도 늘 뭔가 허전한 이유는 바로 우리가 채워짐의 시간을 올바로 고려하지 않고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충만한 시간을 향해서 함께 나아가야 합니다. 우리가 예수님을 다시 만나는 바로 그 날, 우리는 비로소 이 시간의 개념에 대해서 올바로 깨닫게 될 것입니다.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말한다. 이 세대가 지나기 전에 이 모든 일이 일어날 것이다. (마르 13,30)
그렇습니다. 모든 것을 채워짐의 시간으로 바라본다면 이 말을 충분히 이해할 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 우리의 시간이 채워져감에 따라서 모든 것은 우리가 태어나고 죽음에 이르기 전까지 일어나게 되는 것이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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