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승님, 이 여자가 간음하다 현장에서 붙잡혔습니다. 모세는 율법에서 이런 여자에게 돌을 던져 죽이라고 우리에게 명령하였습니다. 스승님 생각은 어떠하십니까?” (요한 8,4-5)
1) 명백한 죄악의 선언
한 여인이 잡혀옵니다. 그 여인은 간음하다가 현장에서 붙들린 여인입니다. 죄를 짓고 있는 중이었고 죄를 마감한 것도 아닙니다. 한창 죄중에 있던 여인입니다.
2) 율법에 따른 심판
사람들은 이미 심판을 끝내었습니다. 모세의 율법에 따르면 이런 여자들은 돌을 던져 죽여야 합니다. 사람들은 이제 좋은 먹잇감을 가지고 있고 먹기만 하면 됩니다. 자신들의 증오를 쏟아부을 아주 훌륭한 대상을 찾은 셈입니다.
3) 예수님을 향한 시험
율법학자들과 바리사이들, 그들은 예수님의 의견을 구하는 게 아닙니다. ‘너는 어쩔거냐?’라는 식의 반항입니다. 그리고 행여 엉뚱한 소리라도 하면 그걸 꼬투리 잡아서 예수님 마저도 처단할 심산이었습니다. 그들의 마음은 단단히 꼬여 있었고 악에 사로잡혀 있었습니다. 그런 가운데에서도 그들은 자신들을 ‘심판자’로 자처하고 있었던 것이지요.
4) 침묵
예수님은 마치 아무것도 들리지 않는다는 듯이 땅을 상대하고 계십니다. 그들의 요구에 즉각적으로 반응하지 않으십니다. 예수님은 사람들을 알고 있었고, 그들의 ‘흥분’을 알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그 흥분에 가장 좋은 처방전인 ‘침착함’으로 응대하십니다.
5) 너희 자신을 알라
예수님은 마침내 몸을 일으키고 핵심적인 한 말씀을 던지십니다. 그리고 그 말씀은 그들의 요구에 엇나간 것이 아닙니다. 예수님은 돌은 던지라고 하십니다. 하지만 그 이전에 ‘너희 가운데 죄 없는 이’가 그렇게 하라고 합니다.
6) 반성
흥분이 가라앉아 있던 군중은 그분의 말을 분석합니다. 그리고 나이 많은 자들, 즉 지혜가 있는 자들부터 스스로를 돌아보게 되고, 결국 예수님의 말씀에 동의하게 됩니다. 즉, 그들 중에 죄 없는 자는 아무도 없었던 것입니다. 또한 무엇보다도 그 여인을 단죄할 자격이 있는 사람은 당연히 예수님일 것입니다. 그러나 그분은 여인을 단죄하지 않으십니다.
7) 여인을 향한 용서
사실 이 마지막 부분은 앞서 있었던 일의 에필로그와 같은 것일 뿐입니다. 실제로 일어났던 일은 예수님과 흥분한 군중 사이에서 벌어졌습니다. 상황은 이미 정돈되었고 예수님은 여인을 용서하고 돌려보내십니다.
이 일련의 상황에서 우리는 우리 자신을 살펴보아야 합니다. 우리는 때로 누군가를 용서하지 못하겠다고 하느님 앞에 맞서고 나섭니다. 그리고 그를 향한 온갖 집중포화를 내적으로 퍼붓고 있지요. 하지만 하느님은 우리가 스스로 생각하기를 원하십니다. 우리가 스스로를 돌아보기를 원하시지요. 그리고 우리는 알게 되는 것입니다. 즉, 우리 스스로 하느님 앞에 내세울 것이 하나도 없다는 것을 말이지요. 우리가 증오하는 그 증오 자체로 우리도 이미 심판의 대상이 된다는 것을 알게 되는 것입니다.
누군가를 미친듯이 증오하는 사람은 흥분해 있거나, 지혜가 없는 사람들입니다. 먼저는 흥분을 가라앉혀야 하고, 또 지혜있는 이의 말에 귀를 기울일 줄 알아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일을 그르치게 되고, 자신의 증오 때문에 살인을 정당화하게 됩니다. 만일 예수님의 침착함과 지혜가 없었더라면 그녀는 간음을 저질렀지만 사람들은 살인을 저지르게 되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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