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 평판을 가지는 것은 참으로 중요한 일입니다. 하지만 과연 무엇이 좋은 평판인지는 생각을 해 보아야 합니다. 어떤 위선자가 하느님을 두려워하는 마음 없이 사람들에게서만 좋은 평판을 얻으려고 노력할 수 있습니다. 그는 사람들에게 선물을 주어가면 사람들의 마음을 사려고 하겠지요. 그렇게 그는 자신이 ‘선한 사람’이라는 각인을 심어주려 합니다.
하지만 실제로 그는 그렇지 않습니다. 오히려 이기적이고 하느님을 사랑하는 마음이 없는 위선자일 뿐이지요. 그는 이웃도 사랑하지 않습니다. 그저 그를 이용할 뿐이지요. 언제라도 그가 자신의 이해관계에 상충되면 그와는 적대적 관계를 맺을 준비가 되어 있을 뿐입니다. 그는 이든 저든 세상 사람들의 평판을 얻을 것입니다. 그는 ‘주는 사람’이라는 평판을 얻겠지요. 하지만 그 평판이 과연 언제까지 지속될까요? 얼마 가지 못할 것입니다. 왜냐하면 자신의 본성을 속일 수는 없기 때문입니다.
사자가 얼마간 풀을 뜯어먹는 시늉을 할 수는 있지만 진정으로 자신이 원하는 것은 살코기이며 언젠가는 풀을 가져다 바치는 토끼를 한마리씩 잡아 먹고 결국 그 소문이 퍼지고 말게 될 것입니다. 내면에 참된 선을 지니지 못한 이, 즉 하느님을 진실로 사랑하지 않는 이는 머지 않아 그 본성이 드러나게 됩니다.
반면 진실한 평판은 억지로 꾸며내는 것이 아닙니다. 그것은 절로 드러나는 것입니다. 남을 돕기를 좋아하는 사람은 그 도움이 절로 드러나게 됩니다. 그가 아무리 숨기려 해도 숨길 수가 없는 노릇입니다. 마치 한낮의 태양빛을 아무리 검은 천으로 덮으려 해도 아주 작은 빈틈으로 새어 비치는 것과 같습니다. 그리고 빛을 좋아해서 그 빛으로 모여든 사람들이 천을 치워버리려고 하기에 결국에는 태양빛이 드러나게 되지요.
애써 가진 척 자신을 드러내려 하지만 실제로는 가진 것이 없는 사람은 부차적인 것으로 자신을 드러내어야 합니다. 바로 거기에서 ‘위선’이 형성되는 것이지요. 그리고 그 위선, 즉 거짓 선은 그것을 받는 이에게도 그닥 좋은 영향을 미치지 못합니다. 특히 훗날 속았다는 것을 알게 되면 더욱 더 그 반작용은 심하게 되지요.
진정 좋은 평판은 하느님을 사랑하고 그 사랑을 실천하는 이에게 절로 주어집니다. 그리고 반대로 그는 시기하는 사람들로 인해서 엉뚱한 평판을 지니고 있기도 합니다. 바로 예수님께서 그러하셨던 것처럼 말이지요. 예수님은 참된 구원자요 메시아이기보다 먹보에 술꾼으로 알려지곤 했었습니다. 그러나 어둠은 결코 빛을 이길 수 없었지요.
나는 사람들에게서 영광을 받지 않는다. (요한 5,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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