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기심은 절로 생기는 것입니다. 동물들도 호기심이 있습니다. 뭔가 새로운 것을 발견하면 그것이 무엇인지 알아보려고 다가서지요. 하지만 호기심은 얼마 가지 않습니다. 호기심거리가 충족되고 나면 자연스럽게 사라지게 됩니다. 드라마들이 계속될 수 있는 것은 마지막에 ‘호기심거리’를 남겨놓기 때문입니다. 사람들은 그 호기심이 채워지기 전까지는 그 드라마를 계속 보고 싶어하는 셈입니다.
관심은 내어주는 것입니다. 관심은 의지적인 것이고 나의 호의에 관련된 것입니다. 관심은 우리가 정한 상대에 대해서 가지는 것입니다. 그래서 관심은 꺼버릴 수도 있습니다.
예수님은 호기심을 통해서 사람들을 끌어들이셨습니다. 그리고 그 호기심 가운데에서 관심을 이끌어 내셨습니다. 사람들이 스스로 선택하게 하셨지요. 호기심은 얼마 가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그 가운데에서 호기심을 충족한 이들은 다시 제자리로 돌아가고 말았습니다. 하지만 관심을 가졌던 이들은 예수님의 제자가 되었고 그분의 사명을 돕는 데에 일조했습니다.
또한 예수님은 가난한 이들, 소외된 이들에게 관심을 가졌습니다. 그분은 하느님의 사명을 쏟을 수 있는 곳에 관심을 가졌습니다. 그리고 위선자들, 교만한 자들, 자기 스스로 구원을 쥐고 있다고 생각하는 이들에게 헛된 관심을 쏟지 않았습니다.
우리는 어떨까요? 우리는 하느님의 일에 관심이 있을까요? 아니면 그저 호기심으로 잠시 다가선 것일 뿐일까요? 신기한 신심 활동에 호기심으로 다가서고 있지는 않은가요? 파스카 연수가 재미는 있는데 구체적인 내용은 가르쳐주지 않는다고 해서 호기심으로 다가서는 것은 아닌지요? 꾸르실료 교육이 비밀리에 이루어진다고 그게 뭘까 싶은 호기심으로 다가서는 것은 아닐까요? 우리는 그 호기심이 충족되고 지나가고 난 뒤에도 꾸준히 관심을 가지고 있을까요? 아니면 새로운 호기심으로 나아가는 것일까요?
호기심은 결국 채워지고 나면 사라지는 것입니다. 하지만 우리의 관심은 의지적인 선택이며 우리가 내어주는 것입니다. 하느님은 우리에게 관심이 있습니다. 우리는 하느님에게 관심이 있을까요?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