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느님께서는 그리스도 안에서 세상을 당신과 화해하게 하시면서, 사람들에게 그들의 잘못을 따지지 않으시고 우리에게 화해의 말씀을 맡기셨습니다. (2코린 5,19)
하느님은 잘못을 따지지 않으십니다. 다만 우리에게 화해의 말씀을 맡기셨지요. 우리는 그 말씀을 전해주면 됩니다. 그것이 고해사제의 사명입니다.
물론 전제는 있습니다. ‘회개’이지요. 돌아섬이 있어야 합니다. 끊임없이 하느님과 반대 방향으로 서 있는데 화해가 전해지지는 않습니다. 하느님이 화해하기 싫어서가 아니라 그가 화해를 수용하지 않는 것입니다.
물병에 물을 받는 전제조건은 뚜껑을 여는 것입니다. 물이 아무리 많이 쏟아져도 뚜껑을 열지 않으면 소용이 없습니다. 물병이 물을 만들어 내는 것이 아닙니다. 물은 전적으로 하느님이 쏟아주시는 것입니다. 다만 물병이 할 최소의 일은 뚜껑을 여는 것입니다.
고해사제의 사명은 뚜껑이 열린 병에 물을 충분히 쏟아주는 것입니다. 이것이 고해사제의 사명입니다. 그 병이 물로 가득차서 넘쳐 흐르도록 쏟아주는 것입니다. 하느님은 이 일을 맡기셨습니다.
물론 사제로서 고해만 하는 것은 아닙니다. 병들이 뚜껑을 열도록 도와 주어야 합니다. 그래서 하는 것이 ‘강론’입니다. 사람들이 참된 삶의 길을 생각하고 그 길을 찾아 나서도록 도와주어야 합니다. 그리고 사람들이 다가오면 뚜껑을 열어 주어야 하는 것이지요.
물로 가득찬 병은 절로 다른 병에게 모범이 됩니다. 좋은 본보기가 되는 것이지요. 물로 가득 차서 기쁨이 가득하고 행복한 병은 다른 병들이 자신의 뚜껑을 열게 만드는 좋은 계기가 되는 것입니다.
모든 것은 서로 연관되어 있습니다. 사제 혼자서 아무리 애를 써도 병들이 모두 외면한다면 될 일은 없습니다. 반대로 병들이 모두 하느님을 찾는데 사제가 물을 충분히 주지 않아도 문제입니다. 하느님은 언제나 물을 가득 지니고 계시고 그것을 내어주려고 하십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그 은총의 물, 생명의 물을 받아 전해 주어야 하고, 뚜껑을 열고 받아들여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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