온갖 더러운 것이 묻어 있는 물건을 쥐고 들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아마도 우리는 가장 더러운 것이 덜 묻어 있는 곳을 고르고 골라 손가락 끝만 닿게 해서 그 물건을 집어들 것입니다.
영적으로도 비슷한 일이 일어나고 있으니 우리는 매사에 신중을 기해야 합니다. 섣불리 도와 주겠노라고 아무런 경계심 없이 다가서다가는 도리어 그들의 어두움이 우리에게 전해지고 우리의 영혼을 망쳐 버릴 수 있기 때문이지요.
우리는 그들과의 다툼을 피해야 합니다. 그들의 분노는 우리에게 적지 않은 해가 될 것이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신중해야 하고 가능한 모든 충돌을 피할 수 있어야 합니다. 그러기 위해서 우리에게 요구되는 것은 ‘분별’, ‘인내’, ‘관용’, ‘온유’, ‘친절’과 같은 덕목입니다.
무엇보다도 ‘분별’을 잘 해야 합니다. 우리가 마주하고 있는 것이 어두움인지 빛인지도 구별하지 못하면 우리가 그것에 경계를 가질 이유도 없기 때문입니다. 사실 적지 않은 사람들이 이런 오류에 빠져들고 있습니다. 그들은 자신들이 대하는 것들을 올바로 분별하지 않기 때문에 많은 경우에 유혹에 빠져들고 죄를 짓게 되는 것이지요.
분별이 이루어지고 나면 ‘인내’가 요구됩니다. 인내가 없으면 우리 측에서부터 화를 낼 것이고 일을 그르치기 때문입니다. 분별을 통해서 상대에게 오류가 있고 어둠이 있다는 것을 알지만 일단은 그것을 견디어 내어야 합니다. 그리고 필요한 때를 기다려야 하지요.
인내와 더불어 함께 요구되는 것은 ‘관용’입니다. 너그러이 용서하는 것입니다. 심지어 그의 오류를 분명히 알고 있지만 심판하지 않고 너그러운 마음으로 그를 바라보는 것입니다. 하느님께서는 악인에게도 해와 비를 주신다는 사실을 알고 우리도 하느님의 마음으로 그를 바라보려고 노력하는 것이지요.
이어 ‘온유’와 ‘친절’이 뒤따릅니다. 이 두 덕목이 없으면 우리는 냉정하게 되고 날카롭게 됩니다. 작은 고양이가 나에게 다가오기를 바라지만 나의 부드러운 손길이 없이 음식을 그 앞에 내던지고 크고 날카로운 소리를 내면 고양이는 도망가 버리고 말지요. 따라서 이 온유와 친절도 중요한 덕목이 되는 것입니다.
물론 이것이 전부가 아닙니다. 이어 그의 오류에 대해서 올바른 대안을 제시해야 하고 그것을 제시하는 방법도 찾아야 하겠지요. 그리고 치유하는 과정도 필요할 것이고 필요하다면 수술을 해야 하기도 할 것입니다. 예수님에 대해서 배우는 사람은 이런 여러가지 것들에 대해서 올바른 방향으로 나아갈 수 있게 됩니다. 하지만 무엇보다도 ‘겸손’할 필요가 있습니다. 몇 가지 재주를 가졌다고 함부로 나서다가는 도리어 스스로의 교만에 빠져들기 십상이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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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점을 고려해 주시기를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