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셉 성인은 성경에는 대사도 한 마디 없고 어쩌면 성모님보다 더 묵묵히 지낸 분이셨습니다. 그러나 그분의 삶은 드러나는 삶의 단편으로 충분히 알 수 있습니다.
무엇보다도 요셉 성인은 의로운 분이었습니다. 그러나 이 ‘의로움’이라는 것은 우리가 흔히 생각하는 의로움과는 차원을 달리하는 것입니다. 마리아의 일을 처리할 때에 그분의 의로움이 분명하게 드러납니다. 그것은 일을 분명하게 처리하는 것이지만 상대에게 가능한 피해가 가지 않도록 조심하는 지극히 섬세한 의로움입니다. 즉 요셉 성인은 파혼은 하지만 마리아에게 엉뚱한 피해가 가지 않도록 몰래 하려고 했지요.
그리고 우리는 성경에서 그가 매번 하느님의 뜻에 충실하게 순명하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임신한 아내를 맞아들이라는 명에 순명하고, 또 가족을 데리고 이집트로 피난을 가라는 명에도 순명하지요. 그만큼 요셉 성인에게는 무엇보다도 하느님의 뜻이 우선이었습니다. 그것은 그분의 깊은 신앙심을 드러내지요.
성가정은 하늘에서 내려오는 양식으로 먹고 산 것이 아니었습니다. 한 남자가 노동해서 벌어들인 돈으로 먹고 산 것이었지요. 노동이라는 것은 하느님의 뜻 안에서 이루어질 때에 신성한 것이고 아름다운 것입니다. 요셉 성인은 한 가정의 가장으로서 이 책임에 헌신하셨습니다. 호구 조사를 위해서 가족들을 이끌고 베들레헴에 간 것도 책임을 다하기 위해서였고 출산을 하는 성모님을 위해서 온 동네를 돌아다니며 방을 찾다가 결국 찾지 못하고 그나마 마구간이라도 찾은 것에서 우리는 요셉 성인의 책임감을 짐작할 수 있게 됩니다.
결국 성요셉에게서는 의로움, 신앙심, 책임감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우리는 그러한 요셉 성인의 삶에 우리를 비추어 볼 수 있습니다.
우리는 의로움을 적용하면서 흔히 그릇된 일을 양산해 내곤 합니다. 즉 필요한 일을 의롭게 처리하는 게 아니라 상대를 박살을 내려고 하는 것이지요. 그렇게 의로운 척, 악을 저지르는 것입니다. 특히나 요즘과 같은 세태에 인터넷 상에서 의로움을 자처하고 발언을 하는 사람들은 조심할 필요가 있습니다. 우리가 흔히 ‘의롭다’고 생각하고 내뱉는 말들 중에는 상대를 향한 증오의 독이 엄청나게 들어있는 말들이 많습니다. 요셉 성인의 의로움에서 배워야 할 부분입니다.
우리의 신앙심은 어떠할까요? 적지 않은 경우 신앙이 최종 선택이 됩니다. 세상의 일을 우선적으로 모두 처리한 뒤에 남는 시간에 신앙의 옵션을 선택하지요. 그래서 우리는 굳은 신앙을 지니지 못하고 언제나 변두리 신자로 남는 것입니다. 참된 신앙은 가장 근본에 하느님을 세우는 것입니다. 그리고 나머지 것들을 배치하는 것이지요. 왜냐하면 훗날 우리가 지닌 모든 군더더기들이 사라질 때에 가장 근본의 하느님을 향한 신앙만이 남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리스도교 신앙인들은 영원을 사는 사람들입니다.
책임감 역시도 생각해 보아야 합니다. 책임을 진다는 것, 특히 가족을 위해 책임을 진다는 것은 생을 헌신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단순히 하고 싶을 때 하는 일이 아니라는 것이지요. 따라서 이 책임에는 분명히 ‘희생’이 동반된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자신을 희생하지 않고는 책임을 질 수 없는 것이지요. 하지만 오늘날 저마다 책임을 지지 않으려는 가정이 눈에 보이곤 해서 안타까운 마음이 듭니다. ‘내 삶은 나의 것’이라는 주장을 하면서 희생하기를 거부하곤 합니다. 그런 이기심이 가정 안에 들어서게 되면 가족은 절대로 하나가 될 수 없습니다.
모쪼록 요셉 성인의 3가지 덕목에서 배울 수 있기를 바랍니다. 그분이 의로우셨던 것처럼 우리도 의로워야 할 것이고, 그분이 하느님 앞에 신실하셨던 것처럼 우리도 하느님 앞에 신실할 수 있어야 할 것입니다. 또한 그분이 막중한 책임감을 묵묵히 지고 가셨던 것처럼 우리도 그럴 수 있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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