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 마태오 복음서 강의를 하면서 “달라는 자에게 주고 꾸려는 자를 물리치지 마라.” (마태 5,42) 라는 구절이 나왔습니다. 강의가 끝나면서 질문을 하라는 시간에 한 자매가 이 구절에 대해서 좀 더 알고 싶다고 물어 왔습니다. 꾸어가서 돌려주지 않는 사람을 어떻게 해야 하는 것이며, 우리는 어떻게 대응해야 하는가 하는 것이 질문의 요지였습니다.
먼저는 악한 사람에 대응하는 법을 가르쳤습니다. 이 구절의 전체 문맥은 단순히 돈을 빌려주고 받는 게 아니라 악인에 대한 대응법을 말하고 있으니까요. 악인들은 먹잇감을 주지 않으면 싸우려 들지 않습니다. 그래서 악인에게는 절대로 맞서지 말아야 합니다. 악인들은 우리가 맞설 때마다 풍선과 같이 부풀어 오르게 됩니다. 반대로 우리가 맞서기를 포기하면 풍선에 바람이 빠지듯이 줄어들기 시작하지요. 그러니 악인들이 치고 들어오면 비켜서면 됩니다. 맞서 싸우면 그들은 반드시 복수를 계획합니다.
다음으로는 금전적인 관계에 관한 내용이었습니다. 만일 나에게 남는 돈이 있고 상대에게 필요한 것이면 빌려주면 됩니다. 하지만 되받을 생각 없이 빌려줄 수 있어야 합니다. 우리는 우리에게 남는 것으로 필요한 이를 도와주는 선행을 한 것이고, 그것을 받는 이가 능력이 되어서 되갚던지, 아니면 자신의 탐욕으로 되갚지 않던지 하는 것은 그의 자유의지의 결정이고 그가 알아서 할 일이 됩니다. 우리는 우리에게 절실히 필요하지 않는 여유분을 언제라도 그것이 진정 필요한 사람에게 내어줄 수 있어야 합니다.
하지만 나에게 절실한 것으로 상대를 도울 필요는 없습니다. 왜냐하면 그렇게 되면 내가 그 돈을 되받지 못해 안절부절 하지 못할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돈을 빌려줄 때에는 상대의 필요도 보아야 하지만 나 자신의 수준도 보아야 하는 것입니다. 그 돈을 빌려주고 언제 받을지 안절부절 못해서 괴로워할 것 같으면 아예 빌려줄 생각을 않는 것이 더 낫습니다. 무언가를 빌려줄 때에는 내가 충분히 잊고 살아도 나의 삶에 영향을 미치지 않는 범위에서 빌려줄 수 있어야 하고 잊어버릴 수 있어야 합니다. 되갚는 문제는 그에게 맡겨야 하는 것이지요.
그러자 다른 자매가 다시 물었습니다. 빌려주었는데 되갚을 생각도 않고 또 빌리러 오는 것은 어떻게 해야 하는가 하고 말이지요. 주제가 돈문제가 되니 사람들의 관심이 집중되는 것을 알 수 있었습니다. 그래서 대답했습니다. 지혜가 필요하다고 말이지요. 필요한 이에게 필요한 것을 내어주는 것은 선한 행위이지만, 그가 그릇된 습관을 들이게 하는 것은 선행이 아니라 어리석은 행위라고 알려 주었지요.
한 아이가 사탕을 달래서 사탕을 줄 수는 있지만 그 사탕만 먹으려 하고 밥을 먹지 않으려 하면 그때는 사탕을 빼앗고 가르칠 필요가 있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나쁜 버릇이 들게 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누군가 돈을 빌려 주었는데 갚지 않는다면 그가 진정으로 처한 상황을 올바로 분별해야 합니다. 정말 가난하고 돈이 없어서 그런 것이라면 설령 되갚지 못하더라도 다시 몇번이고 나에게 여유가 있는 대로 내어 주어야 합니다. 하지만 나에게 돈을 빌리는 것이 편하고 쉬운 방법이라서 그렇게 하고 또 악한 의도로 그렇게 한다면 그를 위해서는 사랑으로 가르치는 마음으로 더는 돈을 빌려주면 안됩니다.
그러나 세상의 물건은 언제나 부차적인 수단일 뿐입니다. 우리는 우리의 내면과 상대의 내면을 분별하는 방법을 배워야 합니다. 그러나 상대의 내면을 분별하는 일도 쉽지 않은 일입니다. 우리는 우리의 내면을 올바로 바라볼 필요가 있습니다. 그리고 거기에서 수많은 것들을 깨닫게 되고 나아가 상대도 올바로 분별할 수 있게 되는 것이지요. 막연히 좋은 사람이 되겠다는 것은 때로는 엉뚱한 상대의 내면을 형성하는 계기가 될 수도 있습니다. 무엇이든 제 목적대로 쓰여야 하는 법이지요.
그러나 마지막으로 하나 권고해 드리고 싶은 것은, 비우는 훈련을 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근본적으로 재물에 대한 애착을 쉽게 지니기 때문에 때로는 비우는 훈련을 하는 것이 참으로 필요한 일입니다. 나에게 그 훈련이 되어 있을 때에 비로소 다른 것들을 분별할 수 있게 됩니다. 여전히 재물을 사랑하면서 그 마음을 숨기고 올바른 분별을 외면한 채로 상대를 비난하면서 어떻게든 자신의 재산을 아끼려는 마음을 지닐 가능성이 높은 것이 우리들의 현실입니다. 길가다 마주하는 거지가 실은 엄청난 부자라고 생각하는 그 마음이 바로 우리의 재물을 사랑하는 데에서 비롯하는 비겁한 변명이 되는 것이지요. 걸인에게 푼돈을 내어주는 것은 우리의 나눔의 훈련을 위한 작은 수단이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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